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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 본격 며느리 빡침 에세이
박식빵 지음, 채린 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3월
평점 :
본격 며느리 빡침 에세이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글 : 박식빵, 그림 : 채린
출판사 : 북로그컴퍼니
나는 80년대생 여성으로
결혼한지 8년차 기혼자이고
여전히 시부모가 미워서 미칠 것 같으며
고부 갈등으로 이혼 생각을 멈춰본 적 없으며(남편 또한)
우울증으로 치료까지 받아봤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 정도.
책의 목차만 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 곤란까지 온다.
나 또한 글쓴이처럼 남녀평등과 민주화의 축복 속에 태어난 대졸 여성이며,
육아, 살림, 직장 등 몸 하나가 너무나 부족한 삶을 사는
평범함 30대 주부이다.
그리고 시부모도 시월드도 평범하다.
며느리를 향한 하대, 막말, 비상식적인 언행이 자연스러운. 하아….
물론 지금은 서로 직접적인 연락은 안 하고
얼굴을 보는 일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나도 빡쳐서 몇 번 들이댄 결과물이다.
이 책의 글쓴이와 나는 너무도 비슷하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 믿음에 배신 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사랑은 특별하다고 착각에 빠져 있었기에.
자기 엄마는 고생 많이 하고 살아오신 착실한 분이며,
며느리에게 엄청 좋은 시어머니가 되실 분이라며,
이런 분이 천국 안 가면 누가 천국 가냐고 그랬다.
결혼해보니 시부모, 시식구가 있는 곳은 내게 지옥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내 결혼생활 얘기를 들으면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냐, 시부모가 나이가 많으시냐고 묻는다.
노노~ 남편 82년생 나 83년생 1살 차이,
결혼하고 시부모의 환갑을 챙겼었다.
나보다 2배는 더 살아온 시부모가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할 때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실패와 상처를 피하게 하고 싶은 부모 마음이려니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러나 저러나 트집을 잡히고
그들에게 맞춰주려 할수록 상황만 더 악화될 때
나는 외치고 싶었다.
당신들에게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신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 0.000000001도 없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해박한 듯 굴더니
나를 괴롭힐수록 당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지 궁금했다.
이 책에는 만화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아주 기가 막히게 공감되고 후련하다.
특히나 위 사진의 네컷 만화는 경탄!
당연한 말도 써 붙이지 않으면 까먹는 모양이니,
매번 각인시켜줘야 하나.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들을
삶을 한참이나 덜 산 며느리가 꼭 이렇게 일일이 가르쳐 드려야 하나.
TV에 나오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의사의 말에는 그토록 귀기울이면서
며느리의 가벼운 말 한마디도 자기를 가르치려 드냐며 역성을 내면서 말이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남자 친구의 부모는 수시로 결혼을 다그쳤었다.
생신, 명절, 결혼기념일 등 이러저러 이유로 나를 불러다
집 사줄테니 어서 결혼하라고 손자 보고 싶다고 진짜 난리였다.
결국 만난지 3년 만에 결혼을 했는데,
이 남자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결혼 안 할거면 당장 헤어지라는 명령에 그럴 자신이 없어서
결혼이라는 엄청 중요한 일을 해치운 내가 병신이었다.
결혼하고도 한동안 병신으로 살았다.
시부모의 힘으로 신혼 집을 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약자이고 죄인이었기에.
내가 집을 사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나한테 사준 것도 아니고,
내가 결혼은 돈 한푼 안 들여 공짜로 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가난 한 것이 약점이가 죄가 되다니 정말 억울하고 분하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니까
어른이고, 남편의 부모이고, 내게 시부모니까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 했던 내 자신이 지금은 가장 원망스러운 내가 되어 버렸다.
글쓴이와 나와의 다른 점은 두가지다.
남편의 행동과 나의 마음 가짐.
남편은 자기 부모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나는 더 했다며 나처럼 싸가지 없는 며느리가 또 어디있냐고 한다.
그래도 직접적인 연락은 차단해주었고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막아 주었다.
하지만 그게 100% 남편의 도움은 아니다.
나의 빡침과 대듬이 밑바탕이 되어 가능했기에.
남편은 여전히 내가 자기 부모에게 다 맞춰주기를 희망한다.
그럼 다 해결되는 문제라며.
또한 글쓴이는 자신과 자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강해졌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아이가 다 크면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아이가 없었다면 벌써 끝났을 이 가정,
물론 내 잘못이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결혼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결코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
잊고 싶어도 자꾸만 떠오르는 하대와 막막들,
나는 행복한 엄마로 살며
내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많이 빗나가 있다.
그 사실에 마음이 더 힘들다.
너무 힘들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어 많이 위로 받았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로.
행복의 방정식은 의외로 명료하고 간단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일을 찾아, 내 삶을 내가 살아가면 된다.
이 쉬운 진리를 몇 년 만에야 돌고 돌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살아갈 몇십 년 동안 잘 지키는 일만 남았다.
-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21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