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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평점 :
투명한 수족관 같은 책 <파일럿 피시>
파일럿 피시란, 수족관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맨 처음 수조에 넣는 물고기로, 물 속이 어느 정도 건강한 박테리아로 가득하게 되면 그대로 꺼내서 버려버리거나 죽여 버리는 물고기를 말한다. 이 파일럿 피시 덕분에 추후 다른 고급 물고기들이 잘 살아가게 되고, 수족관은 계속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파일럿 피시같은 인연을 만나고 이별하면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의미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 소설이다.
책 문장이 참 투명하고 맑고 담백하다. 그리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 속에서 슬픔과 무료함,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만남과 이별 이야기 속에는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반전이 숨어 있으며 읽는 내내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맺는 순간 코 끝이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가 너무 깔끔하고 투명해서 그들의 기억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너와 함께한 시간의 기억이 가라앉아 있지. 그것은 탁자 위에 재떨이가 있듯이 확실하게 존재하지. 그러니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앞으로도 너는 내게 여러 가지 영향을 계속 미칠 거야. 우리 둘은 헤어질 수 없어."
우리 각자에게는 기억을 담고 있는 큰 수조가 있다. 우리의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파일럿 피시같은 인연을 만나고 나면 그 후 이어지는 삶도 파일럿 피시가 뿌려놓은 영양분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성장하게 된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은 것 같다.
"네가 설령 내 앞에서 사라졌다 해도 둘이 보냈던 날들의 기억은 남아. 그 기억이 내 앞에 있는 한, 나는 그 기억 속의 너에게 계속 영향을 받지. 물론 유키코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나베 씨,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의 기억의 집합체처럼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기억의 집합체?"
"난 너랑 헤어지지 않았어. 그게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의미 아닐까?"
비록 언젠가는 물리적으로 이별을 맞더라도 크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왜냐면 한번 만난 인연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은 이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에 밤새 그 이유를 찾아보고 납득해보느라 속을 앓고 끙끙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파일럿 피시>는 주인공이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 관한 기억을 써 내려가면서 그들이 얼마나 현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여름날, 적적함과 공허감을 달래며 희망을 꿈꿔보기 좋은 책이다.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