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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1982년 6월 9일, 서울특별시 한남동에서 김철수는 태어났다.
철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변의 사랑을 받았다. 철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딸 둘만 태어나다가 드디어 아들을 가졌다며 좋아했고, 철수의 아버지는 철수가 크면 분명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좋아했다.
그러한 사랑으로 태어난 철수는 집안의 사랑을 독점했다. 초등학교 입학식때는 위에 두 딸들에게는 옆집 언니가 쓰던 크레파스를 물려받고 물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철수에게는 24색의 새 크레파스를 사줬다. 책가방도 마찬가지었다. 위에 두 딸들에게는 언제 유행이 지난지 모를 물려받은 가방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철수에게는 요즘 방영하는 유명 로보트가 그려진 가방을 사주었다.
그렇게 사랑받으며 커갈 무렵, 철수가 중학생 1학년이 되자 동시에 둘째 누나의 고등학교 입학시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차며 여자가 배워서 어디 써먹으려고라는 말을 줄곧 반복하시며 실업계 고등학교나 가서 여공이나 해라고 하셨다. 하지만 둘째 누나는 줄곧 교대에 가서 선생님이 되고싶다고 했고, 누나는 가족몰래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선생님의 귀띔으로 아버지의 귀에 들리고 말았고, 둘째 누나는 그날 밤이 새도록 회초리를 맞았다. 결국, 철수의 누나는 좋은 성적에도 불구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철수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철수는 무언가 조립하는 것을 더 좋아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려고했지만 아버지께서는 항상 남자는 큰일을 해야한다며 철수를 다독였다. 철수는 학교에서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 최초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철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안가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1년 후 제사날이 다가왔다. 공장에서 나름 개인 화물차를 가지고 있던 운전기사와 결혼하여 독립한 첫째 누나와 실업계 내에서 성적이 좋아 은행원이 되어 남자친구와 동거하던 둘째 누나는 할아버지 제사를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철수의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내리 줄담배를 피시더니 이내 요즘 여자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며 한탄하시고는 이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남은 소주를 소주잔에 붓더니 들이켰다. 뒤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작은 이모가 열심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등에서는 익숙했던 파스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급여로는 부족해 식당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언젠가 허리를 붙잡고 왔던 게 기억나, 철수는 어머니를 돕기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그순간 아버지가 고함쳤다. 사내새끼가 어디서 주방에 들어가냐고
철수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보시더니 이내 내게 돌아가라는 눈빛을 보냈고 철수는 결국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할아버지의 제사, 천주교 신자였던 할아버지를 위해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외고 절을 하는 순서가 돌아왔는데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먼저 절을 하고 그다음 차남이었던 삼촌, 그리고 철수가 절을 했다. 열심히 제사음식을 차렸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할머니는 목례만 한 후 이내 다시 올려놨던 제사음식을 치우시기 시작했다. 철수는 전처럼 돕지 않았다.
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방의 국립대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철수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이내 행복함도 잠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철수는 편지를 여자친구로부터 무수히 많이 받았고 덕분인지 훈련소 내에서 1등을 하여 상장도 받았다.
그러는 기쁨도 잠시, 철수가 일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을 때 여자친구는 철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철수는 분노를 참지못하고 여자친구의 뺨을 때렸고 이 사건으로 철수는 헌병대에 인계되었다. 헌병대장은 철수를 보더니 이내 웃음지으며 남자가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며 오히려 철수를 다독였다.
철수는 15일간 입창을 하고 전 여자친구에게 몇백만원정도의 합의금을 주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철수에게는 죄책감보다 그 돈으로 차라리 군부대 주변의 사창가를 몇 번이나 갈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만이 자리잡고있었다.
철수는 군대를 전역한 후 복학생이 되어 정신없이 취업준비를 하던 도중 둘째 누나의 집들이에 가게 되었다. 철수의 둘째 누나는 남자친구와 결혼 후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은행에서 권고사직을 당했고 누나는 일대신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철수의 둘째누나의 남편은 나름 잘나가는 증권맨이었는데 철수는 누나처럼 일 안하고 집안일만 하는 게 너무 부러웠다. 남편 돈으로 매일 커피사먹고 자기 좋아하는 태교 여행이나 다니는 누나를 보면 왠지 요즘 컴퓨터에서 자주 보이는 김치녀를 연상시키는 거 같았다. 이후 철수는 자신이 줄곧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누나에 대한 글을 올렸고, 그 글은 많은 추천수를 받았다.
철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중견기업에 취업하게되었다. 철수의 사수(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여성이었던 대리였다. 업무를 보던 도중 과장이 커피를 타오라고 지시하자 막내였던 철수는 바로 일어나 탕비실로 향하려고 했는데 과장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여자가 타준 커피가 더 맛있을 거 같다면서 시선은 대리를 향해 있었다. 결국 대리님은 탕비실로 들어가 커피를 타 과장님께 드렸고 과장님은 역시 우리 미쓰 권이 타준 커피가 맛있다며 소탈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렇지만 철수의 부서 과장님은 나름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생수통을 갈 일이 있으면 언제든 철수를 불러 대신 갈도록하였고 무거운 물건을 들 일이 있을 때도 그게 타부서의 일이었든 철수에게 여성분이 무거운 걸 드시는 데 뭐하고 있냐고 뛰어가라고 하시곤했다.
과장에 대한 불만이 쌓여갈 즈음, 권대리님은 결국 과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철수도 며칠 후 과장에 대한 불만이 극에달해 사직서를 제출하였는데, 우연히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권대리랑 마음이 맞았던지 이내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철수는 이후 재취업을 했고, 권대리랑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길을 가던 도중 역 앞에서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시위를 보게 되었다. 철수는 생각했다.
남자가 얼마나 힘들고 차별받는데, 군대도 안가고 꿀이나 빨면서 저러고 싶을까?
오늘은 아내가 무슨 밥을 차려놨을까 생각하며 철수는 바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