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고상만 지음 / 청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 2001년 11월 26일, 인권운동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3년간의 산고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반영하듯 진정은 첫날부터 무더기로 접수되었다. 첫날에만 120여 건에 이르렀고, 열흘 남짓 만에 600여 건을 넘어섰다. 이 중 제 1호로 접수된 진정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제 1호 진정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충북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 과정에서 탈락한 전 충북 제천시 보건소 의무과장 이희원 씨에 관한 것이었다. 공석이었던 보건소장 자리에 자신이 유일한 적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당한 이희원 씨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자 제천시장에 대한 성토로 여론은 들끓었다.

이희원 씨의 경우는 한국의 인권현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사독재가 종식된 이후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은 더디지만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인 민주화를 통한 언론자유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은 여전히 그칠 줄 모른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차별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노력 못지 않게 일상적인 인권의식의 제고가 필요한 셈이다.

이 책은 10여 년 넘게 현장에서 일한 어느 인권운동가의 기록이다.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저자는 현장에서 만났던 인권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을 절절히 펼쳐낸다. 탁월한 이론이나 정치한 분석 같은 것은 없지만 풍부한 현장 경험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저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이 책을 이끄는 힘이다. 저자가 쏟아내는 사연들을 하나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인권운동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피부로 느껴진다.

1부 '인권 현장에서' 편은 저자가 인권운동을 하며 접했던 사건들의 기록이다. 자신을 인권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선배 김용갑의 이야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던 어느 빈민 장애인 노점상의 이야기 등의 개인적 기록부터 한총련 여대생 성추행 사건, 전태일 열사의 삶 등의 사회적 기록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공권력의 반 인권의식을 고발하고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실상을 전달한다.

2부 군 의문사 '진실과 화해' 편은 군 의문사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사회적인 주목을 끌었던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대해서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룬 부분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최소한의 인권의식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대의 현실이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하느냐?'는 모 대령의 말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3부 '사법부를 생각한다' 편에서는 법의 평등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존속살해 무기수의 이야기와 구로구 사채업소 피살사건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명언이 다시금 떠오른다. 불편부당해야 할 사법부의 판결이 혹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한겨레'는 창간 15돌을 맞아 1988년과 2003년의 한국인들의 사회인식을 비교했다. 한국인들은 지난 15년간 삶의 질의 측면에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거나 오히려 나빠졌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인권상황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1988년 71.5%에서 2003년 58.2%로 낮아졌다. 그러나 2003년의 조사에서도 ‘심각하지 않다’(36.0%)보다는 '심각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것은 인권상황이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기대한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 적힌 인권단체 연락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인권운동가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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