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 초반, 나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본격적인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았던 독수리가 매일 쪼는 것같이 내 심장은 아팠고, 그 심장을 맷돌로 갈아 가루로 날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고통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으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근근이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때 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아버지는 알겠는데, 예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때부터 시작하여 내가 40세 이후 신학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나는 예수의 그리스도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사복음서 중 마가복음을 가장 사랑한다. 어릴 적 읽을 때는 사복음서 중 별 특징이 없는 가장 평이한 글이었지만, 인생이 주는 녹녹치 않은 과제를 풀어가면서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통해 만난 마가복음은, 간결하고 담백하면서 호흡이 짧은 글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을 통해, 예수라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이후 222월에 목사 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내 목회 사역지를 떠나게 되었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거절당했나 하는 자괴감으로 많이 힘든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유퀴즈 차준환 편 인터뷰를 시청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가 능력있는 피겨 스케이팅 운동 선수인지보다, 피겨 스케이팅 운동선수로서 기술력과 예술력을 기르기 위해 지난한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오고 버텨왔는지에 대한 그의 담담한 고백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전혀 살아가는 시간대과 공간대 그리고 삶의 관심사가 다른 사람임에도 만나는 접점이 있었다. 그의 베이징 올림픽 경기를 찾아 보았고, 그때서야 참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경기를 펼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난 그때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그의 팬이 되었다. 운동한지 300일이 넘는다. 덕분에 몸무게 12kg을 뺐고, 지금은 탄력 회복을 위한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박사학위과정에 합격도 하고, 편입하여 현재 전문목회사역을 위해 필요한 공부도 별도로 하고 있다.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충걸 님이 차준환 선수를 포함해서 11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한겨레출판이 그의 두 번째 인터뷰집으로 <질문은 조금만>을 발간했다. 차준환 선수 인터뷰는 이미 한겨레신문을 통해서 읽긴 했지만, 한겨레출판이 차준환선수네이버공식팬카페에 이충걸 님의 사인이 담긴 책을 증정받아 읽고 서평을 쓰는 이벤트를 제안하여, 내가 거기에 당첨되는 영광을 얻었다.


앞으로 더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이충걸


증정 받은 책 첫 장에 위 한 줄이 적혀져 있었다.


사인만 달랑 들어있으면 교만하게 보일까봐, 증정하는 책마다 다르게 적었다고 한다. 한글에 한참 서툴은 사람이 적은 듯한 울퉁불퉁한 글씨체에 담긴 저 문장 하나가 왠지 미소짓게 했다. 마치 이것이 저의 최선입니다.’ 라고 말하며 공손히 두 손 받들어 내게 책을 주는 듯 했다.


11인의 인터뷰 내용을 줄 그어가며 착실하게 읽어가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프롤로그를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 어떤 의도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11인의 인터뷰를 진행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법학을 전공하고, 늦게 신학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내가 접한 글들이 문학성이 풍부한 인문학적인 글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런 글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단지 제법 다른 사람보다 글을 읽고 쓰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더 접한 까닭에 지금까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많이 받아오며 나만의 글 체계를 세워왔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가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듯이, 그의 인터뷰 글에 대한 나의 서평도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음을 재천명하는 바이다.


11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순수한 열정 만큼이나, 이충걸이라는 사람도 참으로 그들의 자의식을 글로 표현하고자 자기만의 순수한 방식으로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패션 현장에서 장식품 하나 하나도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듯, 단어 하나 하나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입힐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느라 얼마나 고심했을지 그의 순수한 노력의 흔적은 여실히 잘 드러나 있었다. 인터뷰이의 인생 안으로 들어가고자, 그들의 인생 안에서 결핍을 찾아내고자, 그들을 이해하고자, 그래서 그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해 고뇌하는 작가 이충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섬세한 마음,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없다. 이충걸은 그런 마음을 지녔다는데 확신한다.


그러나 인터뷰 글이 인터뷰어의 사적인 관점이 충분히 반영되는 글이라는 것을 십분 감안한다고 할지라도, 패션잡지가 아닌 신문이라는 지면위에 펼쳐지는 인터뷰 문장으로서 이충걸의 것들은 내겐 버거울 정도로 장식이 많아 보였다. 약간의 불균형적이고 은유가 심한 아방가르드적인 문장조차도 패션 잡지 속에서는 독창적인 패션의 관점에서 조금은 지적이고 스타일있게 근사한 것으로 보여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신문 독자에게 인물을 알게 하는 글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게다가 인물의 외모나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묘사하기 위한 그의 테크닉과 차용하는 소재들이 마치 번역 외국 소설에서 등장할 법한 것들이어서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인터뷰이 만의 독특한 인생의 향기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을 때는 마치 정글에서 나만의 이해의 길을 막고 있는 수많은 가지들을 쳐내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일단 그의 글을 읽기에 내 소양이 많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핑계를 대고 싶다.


이충걸은 최백호, 진태옥 같이 인생에서 자기만의 충분한 사유를 거치고 검증된 자들을 인터뷰할 때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잘 말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작은 모습으로 조용히 듣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책 제목처럼 많은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 또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었다.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 온 바람결에 실린 그들의 인생의 향기를 맡으면 되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세상의 중심에 선 이들의 인생과 결핍 및 자의식을 알고자 할 때는 그도 많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간 중간 그의 말이 너무 많아서, 그가 그렇게라도 채워야 할 정도로 인터뷰 내용이 적었나 아니면 이충걸 식으로 독자에게 너무 친절한 건가.


인터뷰가 뭘까? 특히 신문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선정하여 어떤 관점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하고 그것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그 내용을 어떻게 글로 펼쳐낼지, 그 과정은 보통 작업이 아니다. 나 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이런 부류의 일을 하면서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고충을 잠시나마 겪은 한 사람으로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터뷰어는 절대적으로 인터뷰에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거다. 나도 나름대로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듣는 사람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녹음해 놓은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했나?


참으로 어려운 글쓰기 작업이긴 한데, 가장 평이하고 간결하며 담백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으로 인터뷰이를 소개하고 인터뷰 내용을 담아야 한다. 정말 간결한 질문이고, 거기에 대한 담백한 대답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자신과 타자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큰 울림을 독자가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인터뷰어의 의무이자 책무이며, 독자의 권한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질문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인터뷰 대상을 독자가 있는 그대로 그의 인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공감을 할 수 있는 접점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때 독자는 인터뷰이를 직접 만나게 된다.


내가 너무 엄청난 주문을 이충걸 님에게 요구한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미소를 지으며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이충걸 님의 인터뷰 글을 읽은 독자가 과연 그 인터뷰이의 팬이 되었을까? 아니 될 수 있을까? 난 분명히 마가복음을 더 깊이 알고 난 뒤 예수의 추종자가 되어 그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유퀴즈 인터뷰를 시청하고 차준환 선수의 팬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너무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들이자 같은 인간이다. 인생에서 뭐 하나 그냥 되는게 없고 살 떨리고 죽을 것 같은 노력을 오랜 시간동안 해야만 겨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인생의 그러한 극적인 스릴을 경험하며 함께 살고 있는 동지들이란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접점이다. 이충걸 님의 다음 인터뷰집에서는 이런 접점을 많이 찾고 싶다. 화이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모닝 - 알렌 박사가 말하는 슬픔 치유 한알의 밀알 39
알렌 휴 콜 주니어 지음, 윤득형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좋은 애도

좋은 애도, 나쁜 애도가 있을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마침 귀에 흘러들어오는 부활의 Never Ending Story 때문이었을까? 내 가슴 저 깊이 저변에 깔린 감정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신학을 시작하기 직전 내 인생에 어이없어 할 때 30년 전에 먼저 하늘나라에 올려보낸 내 남동생이 꿈에 나타났던 일이 생각났다. 작은 뱀들에게 내 몸을 이리저리 물렸는데 다 떼어지고 물린 상처만 남겨졌는데, 남동생이 그랬다. “누나 울지마 괜찮아 이제 다 떼어냈어..” 그 말을 건네는 내 남동생은 하얀 반 면티셔츠를 입은 장성한 남자였다. 12살 소년이 아닌 장성하고 성숙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작년에 학교에 언더우드가 사람들이 왔었다. 리차드 언더우드가 말하기를 선교란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서 참으로 울 일들이 많았다. 나라를 잃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 힘든 인생 때문에 울고 못난 내 자신 때문에라도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에 같이 동참해주었다. 슬픔에 같이 곡을 해주었다.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회장인 윤득형 박사가 번역한 알렌 휴 콜 주니어 박사의 <Good Mourning>은 본인의 슬픔에 본인 스스로가 그 슬픔에 잘 동참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슬픔에 동참하는 방식은 알렌 박사의 말처럼 자신의 인생경험이나 사회문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이 곡을 해주고자 하는 방식에 대한 틀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그 안에 어떤 내용물과 색깔을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알렌 박사는 목회상담 교수로서 인생에서 겪는 상실의 경험을 잘 다루기 위해 학문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만, 이것을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예수 그리스도가 슬픔을 겪고 있던 민중의 마음에 같이 동참했던 그 마음을 글로 풀어 쓴 것 진배없다. 즉 목회적인 관점(Shepherding Perspective)에서 목자가 양을 돌보는 마음,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울 때 같이 울어주는 그 마음을 목회상담학이라는 학문 분과를 통해 설명해주는 것이다. 같이 울어주지 못하는 사람 자신을 위해 울 줄을 모르는 사람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면 바로 사랑이 뭔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Good Mourning> “좋은 애도는 중요하다.

혹시 모르겠다. 상실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이 책을 읽을 기회를 갖는다면 자신의 특별한 경험에 비추어 어느 누구도 내 상실은 보상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3자가 말하는 상실감에 대한 애도 방법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공간을 처음부터 마련해두고 있다. 그러므로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라. 상실감을 직접 겪은 사람이든 그러한 상실감을 겪은 사람에게 인내와 시간을 통해 좋은 애도로 방향을 제시해줄 애도상담가든 어느 누구에게도 인생에서 겪는 상실감을 극복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구성은 총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상실의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면서 왜 상실감에 대한 좋은 애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2부에서는 그렇다면 좋은 애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좋은 애도를 촉진시키는지, 좋은 애도를 위해 신앙과 기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 준다.

개인적으로 남동생을 잃은 큰 아픔은 30년이 지나도 어제일 같다. 그만큼 인간이 겪는 상실감이 어떤 구체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완전히 극복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무엇이 상실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전략들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실천에 옮겨보기 바란다. 우리 나라 속담에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모든 일에 그렇듯 상실감도 시간이 최고의 약이다. 여기에 나와있는 방법론은 그 시간의 무게와 잔인함을 버티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줄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