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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자의 나라 - 비정규 노동으로 본 민주공화국의 두 미래
이한 지음 / 미지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비정규직이 문제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얘기를 들을 때 저임금과 낮은 대우를 받는 안쓰러운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내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비정규직으로 상당기간 일했지만 여태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정규직은 회사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데 정규직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대체로 파견 근무를 하거나 간접 고용된 사람들을 말한다. 시간제로 일하거나 특수고용(학습지 교사 등)의 경우도 있는데 보통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할 때는 파견이나 간접고용의 경우를 일컫는다. 보통 자신을 고용한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한다.
그 사람들이 선택해서 그런 일자리를 구한 거 아닌가? 성인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하는 거 아닌가? 우선 비정규직당사자는 어쩔 수 없이 형편이 안 되어 그 일에 지원한 것이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 자명하다. 집을 게 하나밖에 없어서 집어 들었을 뿐인 데 ‘선택’했다고 하면 황당하지 않을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는 거지, 근데 그게 왜 문제란 건가? 지금 같은 형태의 비정규직은 국가 전체에, 기업에, 개인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부터 사회구성원의 건강과 행복에까지 모두.
그러면 비정규직 일자리는 어떻게 다방면으로 손실을 입히는 것일까? 두선 비정규직 일자리는 저임금이다. 숙련 기술을 익혀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다.(실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5% 가량이다) 숙련되지 못하고, 여유가 없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의욕을 갖기 힘든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와 기업은 인적 자본(이란 말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ㅜ)을 축적할 수 없게 된다. 비정규직은 불합리한 해고를 자주 당하고 정규직보다 낮은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생계 보조나 건강 보험 등의 복지 비용을 발생시킨다. 임금이 낮은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내수 경제에 악영향이 가고, 자영업자들도 장사가 잘 안 된다. 기업성과에 비정규직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숙련된 생산성 높은 인력확보를 잘 못하고, 기술 개발 같은 혁신을 통해 수익을 늘리기보다 노동자 월급 빼돌려 수익 올리는 회사의 중장기적 미래가 밝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다. 결국 비정규직이 많으면 생산성이 낮고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존 롤즈가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갈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했다는데, 이 불평등은 일부의 기생충 같은 사람들 빼고는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투자에 관한 책을 보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하이 리스트, 로우 리턴’이다. 더 낮은 임금과 대우를 받으면서 일자리에 잘릴 위험까지 항상 안고 있다. 왜 그들에게 부담과 불이익이 집중되는 걸까? 답은 그들이 ‘약자’ 여서다. 약자의 대가가 이러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약자가 될까봐 두려움에 떤다.
요즘 청소년, 젊은이는 꿈이 대기업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라는 얘기에 혀를 차는 어른들이 있다. 그들이 뭘 보고 들어서 그런 꿈을 꾸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첫 출발선에 잘못 서면 평생이 힘들 가능성이 높기에 오늘도 사교육시장은 흥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배움보다는 간택되기 위한 몸짓을 배우느라 힘들고 고단하게 공부한다.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가 얼마 전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고 했다. “청년들이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사회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며 자신은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청년들이 안정보다 도전을 추구하고, 국민들도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는 제안을 한다. 비정규직이란 제도가 가지는 장점은 활용하면서도, 단점은 제거할 수 있는 묘책 말이다. 실시할 경우의 청사진도 제시한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제안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아진다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하나 해결했다고 완전히 국가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리란 건 확실해 보인다. 적어도 헬조선이란 비명은 좀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