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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무를 묻는다 -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
이한 지음 / 뜨인돌 / 2010년 10월
평점 :
이 책에서는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의무를 발생시키는 ‘정의’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과 같이 뜨겁고 거창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정의는 생활과 맞닿아 있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평범한 사람의 눈높이에서 고민하여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준다. 평소에 흐릿하게 감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의무’에 대해서 명확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예시들에서 해학이 느껴져 웃긴 부분도 많았다.
1. 의무. 내게 ‘의무’란 단어는 대체적으로 갑갑하고 뭔가 사목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의무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자율적 영역이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을 괴롭히거나 억압하고 방해하는 것은 의무 위배에 해당한다. 합법적으로 소유한 재산을 멋대로 빼앗거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의무 위배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이 의무를 지킨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과 통하는 것이었다.
2. 법에 대해 불복종 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편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것은 그 법이 정의롭지 못할 때, 정의를 위해 그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예로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여자가 투표를 했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법에 대해 불복종한 시민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 감동적이었다. 많은 법학자들은 그 시민들이 처벌을 감수하고 법을 어겼기 때문에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시민들은 다른 범법자들과 결코 똑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법을 따를 의무라는 공정한 책임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호소를 통해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잘못된 모습을 바로 잡고자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그러한 시민 불복종을 정치 문화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법에게 겸손함과 개방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법은 정의라는 옷을 입고 나같은 작은 사람의 손닿지 않는 곳에 떡하니 버티고 선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무엇이 정의인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정치란 것이 완벽할 수가 없으므로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은 부조리하다고 의사를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얘야, 법이란 이런 것이고 정의란 이런 것이란다. 그러니까 너는 시민으로서 이런 이런 것을 지켜야 한단다.’
‘얘야, 법이란 부르쥬아 돼지들이 자기 이익챙길라고 적당히 만들어서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어쩔수 없이 지키긴 해도 가급적 그딴거 신경쓰지 말고 너도 니 이익 챙기면서 살면 된단다
내가 정치나 법에 별 관심 없던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위의 두 가지가 내가 여태 알던 정치나 법에 대한 관점의 전부였다;;; 저자의 권유는 다소 귀찮게는 느껴지지만(할 일이 늘었어...), 나도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법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정의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또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누구에게는 유리하고 누구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있기 마련인데, 이익을 기준으로 정의를 정한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고 깨달았다...
4. 진정한 공동체.
공동체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의 예로 가족이 나온다. 우리는 보통 가족에게 의무를 느낀다. 가족이니까 각자 서로 챙겨 줘야하며, 의무를 지닌다는 얘기 늘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왜 그런 걸까?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자녀의 욕구를 묵살하는 경우에도, 자녀는 후일 부모를 가족이니까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용서하고 뭐 그래야 하는 걸까? 부모님이 나한테 해주신게 많으니까, 딱 고만큼 나도 해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건가?? 나는 늘 궁금해왔다. 일제 시대의 유명 인사였던 무용가 최승희는 친척들에게 돈을 주지 않아서, 친척들이 그녀를 냉혈한이라고 욕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최승희에게 해준게 뭐가 있다고 친척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녀에게 돈을 요구하고서는 안줬다고 욕을 해도 되는 걸까? 만일 최승희가 정당하다면 그 근거는 뭘까? 최승희가 정당하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가족, 친척이라고 해도 자신의 것을 베풀지 않고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일까?
몇 년째의 고민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정리가 되었다. ‘진정한 공동체’라는 것은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존재들의 모임이지, 서로를 수단으로 대하는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가족이 서로를 목적으로 대할 때 그것은 진정한 공동체이기에 서로 아낄 고유한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내가 이 글을 읽고 나의 가족에게 의무감이 느껴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짜 공동체는 자기들끼리 수단으로 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공동체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우를 들었다. 그냥 불쌍하게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나라 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법이 바뀌면 그들의 생활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은 해고에 의한 경우에만 일하는 곳을 3회만 옮길 수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음을 이용, 사장님들이 착취하고 있음은 안봐도 뻔하다.
5. 마지막으로 저자가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지,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면 좋을까에 대해 세가지 모델을 살펴보는 편은 정말 백미였다.
쾌락이 최고야! 라는 쾌락모델. 쾌락이란 좋은 것이긴 해도 모든 다른 가치를 넘을 만큼의 진정한 가치를 가진 것인가에 대한 고찰.
충격모델.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면 할수록 좋은 삶이다! 쾌락모델과 정반대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재능이 없어서 많이 기여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삶을 살지 못한 것이 된다. 이 모델은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이다. 또한 우리 삶에 ‘세상에 기여하는 것’외의 가치들은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다
저자가 추천하는 삶은 도전모델이다. 도전모델은 적절한 도전에 잘 적응한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결과만이 아니라 동기와 과정 역시 존중 받을 수 있고, 각기 상황에 따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고려한 결정과 행동이 종중 될 수 있는 모델인 것 같다.
충격모델이 아닌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의무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충격모델이 사실은 목적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이지만 어쩌면 더 안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가치와 욕구가 무시되어 올 수 있는 어떤 정신적 병리현상이나, 자신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희생시킨다고 무언가를 했어도 사실은 그것이 정의가 아닐 수 도 있으니까. 정의를 위한 성전같은 것도 그렇고, 자신을 속이기에 딱 좋은 슬로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위해서’. 그 얼마나 추상적인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정치의 필요성을 그토록 느끼지 못했고, 그토록 어렵게만 생각하고 나와는 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미래의 새싹들에게는 복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