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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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취향저격인 책을 발견하여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이 책은 작년 6월에 출간되었다는데 저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ㅠ



허블출판사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이에요.





제목만 보고는 일반적인 에세이나 철학, 심리에 관한 책인줄 알았어요.


휴대폰 메인화면에 4대 인터넷서점 앱을 다운받아놓고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책쇼핑을 하는데


메인에도 자주 올라오고 책띠지에 있는 것처럼 극찬을 받은 책이라 궁금하더라구요.


그런데 책 소개를 읽어보니 SF소설, 공상과학소설이네요.


키야~~~ 이거야말로 취향저격!!!


전에 읽었던 '아르테미스' 같은 소설보다 더 쉽고 단편들로 이루어져있어서


뭔가 횡재한 기분이었네요.ㅋㅋ



책표지 그림도 넘나 멋진데 사진이 왜 저렇게밖에 안나왔는지..ㅜ


게다가 하드커버라서 소장용으로도 강추에요.





김초엽이라는 작가님은 책 겉장을 넘기자


이야~~~ 천재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천재들만 들어간다는 포스텍..


포항공대가 언제 포스텍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공계열의 출신답게 소설도 공상과학소설 장르로 상상력을 펼쳐놓았네요.


이러면 반칙 아닌가요?


저도 화학과 출신인데 글쓰는 재주는.. 없..ㅠ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책은 제 취향을 알고 저를 위해 쓰신 건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완전 반해버린 소설이에요.


소장하고 있다가 아들램이 이 내용을 이해할 정도가 되면


너도 읽어보라고 진짜 재밌고 환상적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부모가 되면 그런 거 같아요.


좋은 음식 있으면 자식 입에 먼저 넣어주고 싶고


좋은 것을 보면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좋은 책이라면요?


당연히 두었다가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겠지요?


이 책은 제게 그런 책이에요.


앞으로의 작가님의 다음 책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꼭 예약구매할 거에욧!!!








보통 책을 읽을 때


저는 이 작가님이 이 책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전달하고 싶어하시는


핵심 메세지가 무엇일까 혹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셨을까하고


파헤치고 분석하면서 보는 편이에요.


숨은 의미를 찾고 그 의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면서 보기에


느리게 읽기도 하고 한참을 같은 페이지에 머물기도 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원래의 습관대로 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마치 사실같은 뒷받침되는 근거를 제시하며 풀어나가니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읽었던 거 같아요.




독자가 온전히 책을 즐기면서 읽을 수 있도록 쓰여져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 탑 중의 탑이 아닐까요?








이야기는 중단편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데이지가 소피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시작하는 첫 작품은


글 속 소피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겠지만


독자들도 함께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 없도록 했어요.


시초지, 순례지로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걸까요?


거기에 무엇이 있었기에..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글 안에서 시점은 한 번 더 바뀌고 있어요.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인데


저는 이런 구성을 좋아해요.


나의 생각이 이야기를 따라 이쪽 저쪽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머리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상상의 일이니까요.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릴리 다우드나'의 일생과 그녀의 업적에 달려 있었어요.


그녀 외에 '올리브'라는 여자도 등장해요.


올리브는 릴리 다우드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개조인과 비개조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원하는 유전자만을 발생 과정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시대도 올까요?


만약 나의 유전자 중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유전자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부분을 만족하고 어떤 부분을 만족하지 못하는지


또한 태어나는 아이가 아름다움과 뛰어난 특성들만 가지고 병이나 악은 없게 태어난다면


그것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최종목표인지


그렇게 계획된 개조인의 삶도 삶으로서의 가치가 있는것인지


비개조인은 영원히 패배자나 선택받지 못한 자로 낙인찍혀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게 과연 옳은 일이고 선행이고 적합한 일인지


등등의 많은 의문과 탐구심을 불러 일으켰어요.



종교를 떠나 생명은 소중하다고 배워왔지요.


생명의 탄생은 그 아기의 부모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유전자 조작 선택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과연 그들은 태어날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서로 상대의 결점을 신경 쓰지 않고 혹은 결점으로도 여기지 않고


갈등, 고통, 불행을 상상의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인 것인가


그리고 그곳을 떠나 순례자로서 시초지에 갔을 때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것을 더 가치있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우주 안의 우리 은하, 그 중 작디작은 태양계,


그 안에서도 지구라는 곳에서 비개조인으로 태어나 한 세대를 살며


기쁨과 슬픔, 평화와 갈등,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야하는

공동운명체가 아니었을까



상대의 결점도 결점으로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를 바랬던


작가님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그려낸 디스토피아가 결국 유토피아는 아니었을까



한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유전자와 똑 닮은 더 완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바랬던 건지


그 마음이 느껴져서 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이순간도 직장에서 사회에서 불합리한 현실에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빚어낸 현상일테니까요.








스펙트럼




스카이랩의 서른세 번째 생물학자로 탐사선에 오른 할머니는


추진체의 설계 결함으로 태양계 밖을 떠돌다 구조되었어요.


할머니가 들려준 외계 지성체의 존재, 그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때 꿈꾸던 지구 밖 외계인의 이야기인듯 했어요.


할머니 희진이 들려주는 그 생명체가 사는 환경 이야기는


동굴 생활, 수렵 생활 등으로 국사 책에서 배웠던 구석기인들의 삶과 별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그들의 언어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지구인 희진과 교류하는 방식, 지성체는


괜히 이 책이 SF 공상과학 소설이 아님을 입증해주는 요건이었어요.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적이었더라도


행성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단서도 알려주지 않으려하셨던 것은


지구 안에서는 유능한 과학자로서 여러 기구들을 이용해 분석할 수 있는 지성인일지라도


지구 밖 외계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었던 자신을 지켜준 '루이'에 대한


배려, 존중, 감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에도 그곳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힘과 무기가 아니라 전염병, 바이러스, 균이었다고 들었어요.


지구에서의 어떤 균이 외계 지성생명체를 위협할 수도 있으니


그들을 보호하고 각자의 곳에서 살던 모습대로 영원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매번 챙겨보는 프로그램인 tvn '책을 읽어드립니다'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외계 생명체가 있다 하더라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지구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함께 각자의 삶의 형태로 존재하기를 바랄 것이라는 이야기를요.


지금까지 쭉 살아 온 생명체라면


누군가를 정복하고 빼앗아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어서 헤치거나 파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


저는 작가님의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느꼈어요.



정말로 있는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사실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인이든 외계 생명체이든 오랜 시간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공존'이라는 가치관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요?








공생 가설






앞에 이야기에 더 나아가 공생 가설은 류드밀라의 상상 속 행성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어요.


지구 아닌 외계 생명체가 우리의 유년기 시절의 바른 가치관을 심어준 거였다면?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 보육자가 아니라 류드밀라의 행성 그들이


아기들을 피와 눈물이 있는 존재로 키우는 것이라면?


그런데 그 기억은 일곱 살을 기점으로 대부분 사라진다..



이 책이 분명 소설이고 작가님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SF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왠지 진짜같고 사실같아서 까딱하면 믿어버릴 것 같았어요.


확실히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잘 나지 않으니말이에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흐름도 작가님의 상상력에 과학 용어를 더해 뒷받침해주고 있어서


제가 읽었던 '아르테미스' 못지 않게 생생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들 중에는 소위 사람 냄새나는 책을 쓰시는 분들이 계세요.


인간적이고 친애적이고 정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즐겨 쓰시는 분들..


그것이 꼭 인문학적인 분야에서만 나오리라는 법은 없지요.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이렇게 탄생할 수 있어요.


작가님은 공생, 공존이라는 단어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시고 계신 거 같아요.


우리 모두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 작품은


제3행성으로 가기 위한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했던 안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남편과 아들을 슬렌포니아로 먼저 보낸 안나는 현재 170세


안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넓디 넓은 지구에서도 아직 못 가본 지역과 나라가 많은데


우리는 항상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결국은 지구 밖 우주를 꿈꿔요.


정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지구 밖 우주의 다른 행성에 가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은 앞으로 상상으로 끝날까요 아니면 머지 않아 현실이 될까요?



작가님의 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우주 밖을 갈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더 나은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의 상황을


안나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어요.


행성과 행성 사이는 광속도로 가도 수십년이 걸리는데


그것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주해서 살 수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저라면..


관광으로 한 번 가보기는 한다해도 계속 그 행성에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같은 지구 하늘 아래에서 떨어져 사는 가족, 친지, 지인들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모두 다 함께 간다고 해도 저는 상상력이 부족한지라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하물며 자신의 가족이 다른 우주 행성에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가지 못하고 있다면 안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우주 연방의 계산기 때문에 미래판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요?



정치와 경제, 이념 차이로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도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세계 유일한 민족이에요.


바로 어제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 연휴가 끝났어요.


라디오에서는 북한에서 내려온 한 여성을 전화연결해서 인터뷰를 하더라구요.


혼자 내려왔으니 북한에 가족들, 친지들, 지인들이 모두 계시겠지요.


이 책을 읽는 중이어서 그런지


저는 책 속 '안나'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념 차이로 만날 수 없는 북한 여성과 경제성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안나


현실판 여성과 미래판 여성의 모습이 묘하게 닮아있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이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은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마지막 안나의 선택은 안되는 것을 알지만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감정의 물성






감정의 물성 작품은 저 또한 이야기의 화자인 정하처럼 이해가 가지않는 시선으로


한 줄 한 줄 읽어나갔어요.


형태도 없고 특성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게다가 좋은 감정이 아닌 '우울'이라는 감정조차 소유하고 만지려는 그 감정은 대체 무엇인가?




한 때 저도 공연을 좋아해서 공연 티켓북들과 프로그램북들을 모았고


지금껏 가지고 있는지라


그런 감정이 담긴 물건들을 보면 그때 생각도 떠오르고


그렇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우울'이라는 감정의 물성을 사는 것은?


정하는 여자친구인 보현의 일로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되요.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기쁨, 슬픔, 공포, 외로움, 행복, 불행, 아픔,...


우리는 어쩌면 좋은 감정만 마음 속에 담으려하고


나쁜 감정은 마음 밖으로 배제시켜 쫒아버리려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의 감정이 어찌 한 편으로만 치우칠 수 있을까요


기뻤다가도 슬프기도 하고 불행했다가도 행복하기도 한 것을..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냐는 대표의 물음에


정하만큼이나 저도 말문이 막혔었네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그것은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내 눈 앞에 보이는 존재하는 감각은 아니었을까요?









관내분실






우리는 이런 상상을 때론 해요.


만약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지금 나에게 뭐라고 말해줬을까?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




관내분실은 그런 상상을 현실로 이뤄낸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 이야기에요.


사후 마인드 업로딩으로 사람들은 영혼이 정말 데이터로 이식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았어요.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인지도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았어요.



3년 전에 죽은 엄마가 이 도서관에 기록되었고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딸 지민이


엄마를 찾으러 가지만


엄마는 인덱스가 사라진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지 심장이 뛰고 움직일 수 있고의 의학적인 의미보다는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어느 한 구석 자취를 남기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취를 남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을 맺고 삶의 반경을 넓혀 가기도 해요.


그렇게 세상과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홀로 두지 않았기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한 번쯤은 겪는 일일 거에요.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라지기도 하고 나아지기도 하지요.


김은하는 그렇지 않았어요.


남편의 무관심과 자식들의 홀대 속에서 점점 더 악화되었던 것 같아요.


그녀를 한 번이라도 이해해보려하고 손내밀어보려했더라면


그녀의 삶은 많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떨어지면 외롭고 우울할 것 같아요.


가족이 있었어도 진정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녀의 과격한 행동과 집착적인 증세 탓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여러 도움을 주는 기관들도 늘고 그런 마음을 치유하는 곳도 늘었어요.


마인드 도서관이라는 미래의 상상 속에서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요?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비록 상상 속이고 시뮬레이션이었더라도


작가님의 끝 마무리는 마음에 들었어요.


살아생전에 방법을 찾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죽은 뒤에라도 마음 속 짐을 덜어준 것 같아서요.


과학문명이 발전해야하는 이유이자 가치일까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비혼모 천문물리학 박사과정생이었던 재경과 회계사무소 직장인 유진


재경의 딸 서희, 유진의 딸 가윤


가족처럼 살림을 합쳐서 살던 이들의 이야기는


우주터널을 먼저 통과한 재경이 롤모델인 가윤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어요.


우주터널이 발견되었다는 상상력도 독특했는데


우주터널을 통과하려면 바꿔야하는 신체 개조 과정도 왠지 과학적인 것 같아서


정말 그럴싸하게 느껴졌어요.




우주의 저편을 보기 위해서 인간이 본래의 신체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성취일까?


우주는 나를 바꿔가면서까지 그 너머를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인간은 꼭 지구라는 땅 위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재경은 우주터널을 통과하기 전에 추진체 불안정으로 폭발 사고를 겪었다는 것


그런데 재경은 애초에 캡슐에 타고 있지도 않았다는 충격적인 진실


재경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녀의 행동과 의미를 추측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윤은 재경처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우주 터널을 통과할 것인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이 책을 완독하게 되더라구요.




이 책을 읽고나면 작가적 상상력이란 지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안의 상상력의 반경은 반경 2km인데


작가님의 상상력은 반경 수십 수천 수만km같다는 느낌


야구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안타만 쳐도 성공한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네요.


안타만 계속 쳐도 점수는 나니까요.


그런데 안타가 아닌 홈런이라면?


작가님의 첫 작품이 홈런이라서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싶네요.








7개의 작품이 끝나고나면 문학평론가의 평론이 실려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 뒤에 평론을 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왠지 학교 다닐 때 문학 작품을 배우고나서 문제를 풀기 위해


밑줄 긋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것,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저것하고


답지 해설을 보는 것 같아서요.



이 평론가분은 이 책의 이야기를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비경제적인 가치 배제, 정상성 기준에 어긋나는 것 배제를 다루어


그것들은 과연 첨단 과학기술로 인류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


과학기술 발전의 귀결 과정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잊혔던 존재를 떠올려볼 수도 있고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 존재들에게 마땅한 가치를 부여해볼 수도 있으며,


과학기술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세상을 꿈꿔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평론가분의 평론을 읽으니 정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평론가는 다르다라는 생각도 함께요.




저는 이 책을 읽을 때


각 7개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약자와 소수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약자와 소수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특정지어 분류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남성에 비해서 여성이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이


원주민에 비해 이주민이


혼인녀에 비해 비혼모가


더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책을 읽는 와중에 그들을 정상적인 사회 속에서 소외계층이라는 인지를 하지 못하고


책을 읽어내려갔어요.




평론 다음으로 나온 작가의 말에서도


작가님은 그런 의도가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각 작품의 발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셔서 흥미로웠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편으로는 평론가분처럼 생각하며 읽으셨을 수도 있고


저처럼 이야기 자체에 빠져서 흥미롭게 읽으셨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구분지어 챙기고 소설 속 주인공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그런 시선조차 없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들을 배려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정해져 있고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듯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에요.


그들은 모두 각각의 삶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받아들이고


편견과 선입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과학문명의 발달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요?



그들을 정말 배려한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서 불편하니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을 신경쓰는 것보다


그냥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일반적인 사람으로 봐주는 것이지 않을까요?




사회는 계속 급변하고 있고


과학문명도 점점 발달할 거에요.


먼 미래에 우리의 주거지가 지구를 넘어 우주가 될지라도


우리는 혹시 모를 다른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안다면


과학문명의 발전의 끝은 유토피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자는 배가 부르면 눈 앞에 먹잇감이 지나가도 잡지 않는다고 해요.


내가 사자이니까 이 구역의 대장은 권력자는 '나'라는 생각이 아닌


육식동물이기에 잡아먹을 수 밖에 없는


생존본능에 의해서 사냥을 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모두 함께 공존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잡아 먹히는 초식동물이 불쌍해서 육식동물을 막는다면


초식동물은 순식간에 늘어나 식물들이 초토화되겠지요.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연의 법칙으로 그 수가 유지되듯이


사회적 약자 또한 안타까운 시선으로 초식동물처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먹이가 다른 특성일 뿐이라고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면


그것이 바로 공존이고 유토피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분명 행복과 기쁨, 희망만 가득한 세상만은 아닐 거에요.


여러 감정의 물성을 지녔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할지라도


공생 가설처럼


스펙트럼을 넓힌다면


관내분실되지 않고


나의 우주 영웅을 꿈꾸며


결국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 거 같네요.


인위적으로 만든 마을보다는 그래도 순례자들이 갔던 시초지가 더 낫다고 믿고 싶으니까요.



과학문명 발달과 함께 시초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공상과학 소설 좀 좋아한다하시는 분들은 물론


미래를 꿈꾸는 남녀노소 모두


지구를 넘는 우주적 상상력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꼭 꼭 읽으셨으면 하는 책이에요.





저는 이 책을 무조건 강추드려요^0^




긴 서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포스팅은 인터넷서점 알라딘 적립금으로 구매하여 읽고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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