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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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소외란, 인간이, 인간이 만든 어떠한 것, 제도나 종교 혹은 화폐에 지배당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왜곡되고 자기편의적인 합리주의에 지도계층에 의해 전쟁을 겪었고, 삶에서 여러 문제로 소외 당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까지도 이어졌다. 전쟁으로 소외를 겪은 사람들은 소설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삶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러한 매체 중 전쟁을 겪지않은 세대인 우리 주변에서, 보전되거나 번역되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건 주로 소설이다. 대표적으로 삶으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을 보여주는 소설은 이방인, 오발탄 그리고 로베르트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가 있다.

이방인은 전통윤리에 의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인 뫼르소가 살해 행위를 통해 주체적으로 어떠한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서술하는 소설이다.

오발탄은 철호와 주변인들이 여러 가지 삶을 힘들게 하는 이유로 상황에 휩쓸려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을 서술한 소설이다.

그러나 뫼르소처럼 범죄를 저지른다 하여 오발탄마냥 소외된 자들이 소외를 벗어날 수 있는가? 로베르토 아를트는 7인의 미치광이를 통해 그럴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에르도사인은 그의 아버지가 저지른 학대의 영향으로, 망상과 전통윤리에 의존하여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대와의 교류를 할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교류는, 오로지 자신에게 결핍된 또는 필요한 무언가를 메운 망상으로 다가가기 위한 일방적인 교류다. 그래서 그는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했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자신이 아내를 위해서 희생했던 것만을 기억한다. 에드로사인은 돈이 필요해 법률선을 넘은 철호의 동생 영호와 마찬가지로, 결핍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회사의 돈을 횡령하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발에 의해, 자신이 만들어낸 돈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찾아가지만 박대를 당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자칭 위대한 거짓말쟁이인 점성술사 의 동료 ‘기둥서방’에게 돈을 빌려 해결한다. 그러나 횡령문제를 해결하자, 일방적인 교류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다른 동반자를 찾고 떠난다는 것을 선언한다. 슬픔과 허무에 매몰된 그는, 범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소외상태로부터 벗어나려한다.

그러나 소외에서 벗어나 니체가 주장한 초인처럼,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는 사람처럼 나아가는, 뫼르소의 사유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이방인과 달리, 소외상태에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과 같은,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며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점성술사가 모은 조직 에서 점성술사의 말을 통해 드러낸다.

『“무신론은 소수의 엘리트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저 어중이 떠중이들을 위해서 우린 행복이란 요리를 만들어 상에 내놓기만 하면 돼. 그러면 저들은 짐승처럼 몰려들어 게걸스레 먹어치우겠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뭔가를 믿으려 하고, 또 믿어야 살 수 있다'는 거요. 우리 인간에게 그건 음식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요.”』

『“우리가 흔히 광기라고 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새로운 생각일 뿐이죠. 우리 생각이나 행동이 미친 것처럼 보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삶의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는 거죠. 바로 거기에 구원이 있는 겁니다.”』

에르도사인은 이러한 점성술사의 말들에 긍정하며, 그가 에스필라 가족에게 부여한, 구리장미를 양산하면 돈을 벌 수 있다라는 환상을 보면서 슬퍼하지만, 자신 또한 자신을 고발한 바르수트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존재확인을 할 수 있다는 상상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에게 부여한 환상에 속박당한 것이다. 즉 이방인이 보여주는 초인과 같은 사람은 믿고 싶은 거짓말에 불과한 것임을, 7인의 미치광이는 점성술사와 에르도사인과 에르도사인이 만난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제일 좋은 것은 인간이 소외받지 않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근현대의 사회에서는 대부분 돈에 의해 소외를 겪는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이 일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다만 한정된 자원과 자신들만을 위한 지도부의 독재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념을 가졌던 대부분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 이전에는 시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차선책으로 시민 전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명제를 반증하고 믿음을 수정하는 과학적 사고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교육은 최소한 자신이 믿는 거짓말에 지배당하기 쉽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혹자는 이러한 교육이 자칫 뫼르소와 같은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뫼르소는 자신의 명제를 반증하지 않았다. 그저 사회의 무조건적인 명제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든 무조건적인 명제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이미 우리는 과학적 사고에 의해 믿음에 지배당하지 않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실험으로 천동설의 믿음을 깨트렸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있었고, 진화론를 정립한 다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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