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정의 - 오에 겐자부로의 비평적 에세이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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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중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익히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집 말의 정의

아사히신문 문화면에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연재한 글을 엮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한 글을 엮은 회복하는 인간(서은혜 역, 고즈윈)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글이 연재되던 2006년 일본에서는 하류사회(미우라 아츠시 저, 이화성 역, 씨앗을뿌리는사람)라는 책이 큰 화제가 되었다. 소득 수준과는 무관하게 무기력, 무감동한 성향과 자기를 향상하려는 의욕이 없는 태도가 청년층의 시대정신이 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고, 가까운 미래로 예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불신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이 청년층을 넘어 사회 전반까지 퍼지고 있다. 일본 또한 하류의 싹을 보인 청년들은 사토리세대가 되어 제한된 현실 속에서 자기만족에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태평양전쟁 직전에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도스토예프스키, 루쉰, 윌리엄 블레이크 등을 읽으며 세계의 문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문체를 확립하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재능 있는 작가.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졸업논문 주제로 사르트르 소설에서의 이미지에 관해 연구 한 만큼, 문학세계는 상당히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작가가 후기에 집필한 이 에세이들에는 자신의 신념이 아주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고, 전 생애에 걸쳐 겪어온 일들과 그에 대한 감상들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서 작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정 내에서는 뇌에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장남 히카리를 양육하고 사회적으로는 평화 헌법을 개헌하려는 정부에 반대하는 ‘9조 모임및 반핵운동, 오키나와 노트(이애숙 역, 삼천리) 집필을 비롯한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록. 정확히 말하면 신념을 가지고 시스템과 국가에 대항해 온, 기나긴 패배 속 작은 승리에 대한 기록이다.

 

확실히 저를 감동시킨 불굴의 사람들은 놀라움에 꺾이지 않고 작은 신기함에도 기뻐하는, 우선 실제로 인간다운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불굴의 사람들을 만나고 감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되돌아보고 자신도 불굴의 의지를 다시 다잡으며 계속 분투해왔다. 그러한 삶의 자세와 따뜻하고 주의 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 전반이 이기기 힘든 상대에 맞선 끊임없는 투쟁이라는 사실은 책을 읽을수록 다시 상기되고, 작가의 고결한 태도와 반전을 이룬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경화가, 세계적으로는 반지성주의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오에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무기력을 학습하던 마음 한구석이 큰 스승을 만난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든든해졌다.

그리고 작가로서 꾸준히 어학과 문학을 공부해 왔으며, 많은 문화인과 교류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렇게 부지런히 활동하면서도 글 곳곳에서 향후 새로운 작업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는 정력적인 사람이지만 글에서는 겸손이 읽힌다. 그 겸손에서 지식인으로서 응당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감정적 스승에서 끝나지 않고, 어문학 공부법, 문학과 비평에 관련하여 읽어볼 만 한 저자와 책,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 등 문학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도 많이 소개한다. 그뿐 아니라 20대부터 3년마다 주제를 정해서 매일 책을 읽었다고 밝힌 만큼 많은 글에서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는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오에의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과는 다른 관점에서 문학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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