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우리 민화 - 민화 보림한국미술관 4
윤열수 지음 / 보림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보림이 하고 있는 '한국 미술관' 시리즈는 반드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작업은 누구든 해 줘야 한다.  적어도 여러 곳에서 해 주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것, 정체성은 고수해야 한다. 뿌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단소리다. 출판사는 유행만 따라가거나, 돈되는 책만 내서는 안된다. 있어야 할 책들을 만드는 일이 출판사가 해야 하는 일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말아 먹을 정도로 운영하란 소리는 아니지만서도, 나름의 신념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세계의 흐름을 잘 잡아 출판을 한다던지, 어느 특정 분야만큼은 세계 어느 출판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자부심같은 것도 기대해 본다. 물론, 이게 내 생계와는 직결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나불거리는 것일 수 있다만, 가끔 이런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런 면에서 보림이 하고 있는 한국 미술관 시리즈는 정말 주목할만 하다.

이번에 5번째 나온 것이다. 시리즈 번호는 4번이나 8번인 [선비의 벗, 사군자]가 네번째로 먼저 세상 빛을 봤고, 시리즈 4번째 권인 이번 책은 5번째로 세상 빛을 본 책이다. 이번에 나온 것은 '민화'다. 우리 민화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작가는 현재 아담한 한옥에서 민화를 전시하고 있는 '가회박물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민화를 소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써 낸 책이니 일단 기본적인 신뢰는 깔린다. 그리고, 탄탄한 구성이 읽기에도, 기억하기에도 좋게 만들어져 있다. 그야말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지,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남녀노소의 교육용 책이라고 번번히 나는 말하고 다닌다. 소장가치는 충분하고, 튼튼한 하드커버와 사이즈도 아주 갖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민화, 예쁘게 꾸미거나, 장식용 그림으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과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교화적인 내용이 담긴 그림으로도 떠오를 것이다. 바라는 희망이나, 빌고 싶은 어떤 마음이 담긴 그림이라고 떠 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민화는 우리와 친숙하고, 가깝고, 쉽다. 그리고 솔직하고, 투박하고, 때론 거친게 또 민화다. 그리고, 민화는 조상들이 자연에 대한 존중과 그들의 소박한 삶의 형태를 순수하게 표현한 마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에게 민화는 시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많고, 상징들이 많고, 그 상징들에 꽉꽉 눌러 담은 마음이 그러하다. 때론 담대하게, 때론 너무도 소박하게 그림 안에 마음을 눌러 담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내 그림과 같이 풍겨 나온다. 그래서, 나는 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시를 읽고 나서, 마음이 그득해 지듯이, 민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그득해 졌다.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을 12가지로 분류하여 책을 구성 하였다.  새해 첫날 복을 바라며 그린 까치 호랑이, 가뭄에 단비를 바라는 용, 사랑의 마음을 담은 화조화나 사랑의 결정체로 보이는 나비가 가득한 백접도, 부부의 다정함을 담은 어락도, 사랑방 책가도, 부귀영화를 바라며 그린 연화도, 꽃처럼 피어난 문자도, 수렵도, 산수화, 신선도, 그리고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십장생......이렇게 12가지로 나누어 충분한 원색 그림 자료들과 더불어 글쓴이의 설명이 제대로 비벼져 만들어진 책이다.

단순한 그림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단, 우리네들의 문화를 그대로 전해주고, 이야기 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하긴, 민화의 탄생이 그러한데,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빠지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민화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였던가.

이 책을 읽다보면, 눈을 즐겁게 만드는 색색의 원화들에 푹~~ 빠지게 된다. 작품가치를 따지는 어떤 정교한 기교나 가치를 높이는 어떤 유명세는 없으나 이름없는 화가들의 손에서 나온 민화들을 가만히 돌아보면, 왜 그렇게 대접를 받지 못했는지 모를만큼 매력적이다. 물론 시대적인, 문화적인 요소들이 대접를 받을 수 없게 만들긴 했지만, 참 안타까운 부분도 많다. 물론, 우리가 이발소그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그림이 다시 재평가되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민화는 이발소그림과는 많이 다르다. 예술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 시대에 있느냐에 따라 당시의 작품들은 그 도마에만 올라가는 법이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의 가치가 대중성에 있는 일은 쉽지 않지만, 시대는 변하고, 당시의 인간들은 죽고, 그림은 다음 시대를 맞는다. 새로운 도마에 다시 올라간다. 그래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두 번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의 민화는 충분히 예술가치가 있다 생각된다.

 자연환경이나, 동물들의 생태를 존중하고, 그안에서 배움을 끌어내고, 상징화하여, 인간의 마음을 그 안에 담은 접근은 언제봐도 존경할만 하다. 그 느긋하고, 겸손한 시각을 말없이, 우리네 그림은 가르치고 있는 기분은 이번 민화에도 다시 드는 생각이였다. 과학의 발달과 새로운 학설과 변화무쌍한 철학적인 사고로 인간의 시각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네 그림은 맑고, 깨끗한 한 사발의 물과 같다.

갈증은 이런 식으로도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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