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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계인 여진족 ㅣ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38
한성주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5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 교사로서 교실에서 4군 6진 개척을 가르칠 때, 우리는 흔히 이를 ‘영토 확장의 쾌거’나 ‘여진족 정벌’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곤 한다. 하지만 한성주 교수의 저서 『조선의 경계인 여진족』은 이러한 단선적인 시각에 균열을 내며, 북방 접경 지역을 정복과 배척의 공간이 아닌 ‘공존과 공생의 장’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이 책은 조선이 여진족을 단순히 외부의 적대 세력으로만 보지 않고,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그들을 포용하려 했던 역동적인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수업 아이디어는 ‘경계인(Boundary People)’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미시사적 접근이다. 저자는 세종 시기 6진 설치가 단순히 여진족을 몰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한 구체적인 구상이었다고 설명한다. 성안에는 조선인이, 성 아래(성저)에는 여진족이 거주하며 형성된 ‘성저야인’의 삶은 학생들에게 역사의 빈틈을 상상하게 만드는 훌륭한 소재가 된다. 이를 통해 국경선을 단절의 선이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현대 다문화 사회의 갈등과 공존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성찰하게 할 수 있다.
수업에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로는 ‘담비 가죽(貂皮) 무역’과 ‘소롱이(小弄耳)’라는 인물을 꼽을 수 있다. 조선 상류층의 담비 가죽 수요가 북방의 경제 생태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이 어떻게 200년간 이어온 평화를 깨뜨렸는지에 대한 분석은 거시적인 정치사 수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여진족 출신으로 조선과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며 경계를 넘나들었던 소롱이의 삶은 ‘국가’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입체적인 인물 학습의 자료로 손색이 없다.
더 나아가 동료 역사 교사들에게 이 책은 조선 건국사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제공한다. 태조 이성계의 의형제였던 이지란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진 군사가 조선 창업의 주역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조선이 여진을 ‘변방의 울타리(번리)’로 삼아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려 했던 전략적 유연함은 조선 전기 대외 관계를 설명할 때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할 대목이다.
결국 이 책은 역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단일 민족의 서사나 승리의 기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조선이 이민족과 맺었던 공존의 지혜는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준다. 『조선의 경계인 여진족』은 교과서의 짧은 문장 뒤에 숨겨진 북방의 생생한 숨결을 교실로 가져오고자 하는 모든 교사에게 신선한 자극과 든든한 학문적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