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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아주 따듯한 떨림
김인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9월
평점 :
어느 봄날, 아주 따뜻한 떨림
역사로 범벅이 되어 있는 이 도시, 그래서 사오싱은 조심해야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자칫 역사 속으로 첨벙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기 전에 그 경계를 걸어봐야 한다. 어떤 역사를 안고 있든 간에 도시는 오늘의 시간을 살고 있다.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 도시는 어떤 오래된 이야기를 안고 있든 간에 그저 죽은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p. 20)
중국은 원래 여러나라들이 합쳐진 나라여서 그런지 중국 대륙이 동서남북으로 넓어서 그런지 아니면 위치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사이에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각 도시들마다 자연환경이나 문화의 차이가 뚜렷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물의 도시이자 일만교의 도시라고 불리는 사오싱 (한국명칭 소흥)은 중국 저장성 사오싱현으로 시내에 작은 다리가 많아서 수향교도(水鄕橋都)라고 불린다. 또한 이 도시는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의 출생지로 사오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루쉰 기념관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한 중국 동진의 서예가로 중국의 서성하면 왕우군, 왕희지가 살았던 생가가있던 마을이 유적지로 보전되어 있어서 일명 서성고리라 불리는 왕희지의 옛 생가 마을이 루쉰의 옛마을인 루쉰고리와 함께 사오싱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책의 저자 김인숙은 어린시절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쫓아 중국 사오싱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문학적 소재를 통해 사오싱의 풍경을 보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물이 있고, 물길이 있고, 배가 있고, 뱃길이 있는 곳에서는 굿을 빼놓을 수 없다. 물을 다스리고 배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귀신이 하는 일. 달래고 어르고 당부하고 빌고, 그 모든 걸 하는 것이 굿이다. 귀신만 달래는 게 아니라 사람도 달래니,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극이 되고, 울음이 되고, 그러다가 삶이 된다. 좌판이 서고, 구경꾼들끼리 싸움이 나고, 누군가는 홀로 그저 서럽게 운다. 소년 루쉰은 그 밤에 바로 그 굿판을 구경하러 간 것이다. (p.49)
햇살이 좋은 낮이다. 열려 있는 바깥으로는 물길이 보이고, 배를 띄우는 작음 선착장이 보이고, 쿵이지 동상이 보인다. 소설 속 쿵이지는 이 술집에 매일같이 들러 황주 한 잔과 콩 한 접시를 시켜 먹었다. 과거 시험에 번번이 떨어진 후 몰락할 대로 몰락한 가난한 양반, 비싼 안주 시킬 돈이 없어 늘 황주 한 잔에 콩 한 접시 먹으면서 상것들에게 온갖 놀림거리가 되는 양반, 그래도 기어코 양반의 허위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헛된 양반 ...... . 루쉰은 이 몰락 양반 쿵이지를 통해 봉건사회의 계급구조를 풍자했다. (p.63)
사오싱의 물길은 뭐가 특별한가?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사실, 물길보다도 그 물길을 건너가는 일이다. 다리를 건너 건너든, 발목에 물을 적셔가며 건너든, 혹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하면서도 건너든 ...... . 사오싱 구차오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사오싱의 옛날 다리,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내게는 이것이 두 개의 단어로 읽히지 않는다. 사오싱의 오래된 다리로 읽히는 게 아니라, 사오싱이 오래된 다리고, 오래된 다리가 바로 사오싱이라는 소리로 읽힌다. (p.13)
또한 사오싱이라는 도시는 월나라의 옛 도읍지였다. 그래서 사오싱의 청스광장은 월나라 유적지들이 모여 있는 푸산의 동쪽 대선탑이 있다. 그리고 이 광장은 사오싱의 옛 물길을 흐름을 볼 수 있다. 이 광장은 특이하게도 광장 바닥에 사오싱이 월나라 도읍지였던 시기의 지도가 바닥에 음각 되어 있어 지도를 쫓아가며 사오싱의 물길을 따라가며 물길이 어디서 모이고 어디서 흩어지는지 옛 월나라의 도읍이었던 사오싱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보게하고 물길들 사이에 놓여진 다리들을 보면서 옛 문학 속 다리가 저 다리가 아닐까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사오싱의 여정의 풍경들은 모두 이 책에 흑백의 사진으로 실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흑백사진으로 실려있는 사진들이 복잡하지않고 물길대로 흘러가며 때로는 건너가기도하는 일만교의 도시인 사오싱의 감성을 더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저자의 사오싱 여정을 따라가면서 사오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사는 냄새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즐겨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저자가 느끼는 중국 여행에서 오는 특별한 감성들을 비록 저자처럼 중국에 살아보진 못했지만 왠지 알 것도 같았다. 사오싱의 아름다운 풍경과 향취를 책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사오싱이 전해주는 인생 속 건넘의 미학을 이 책을 통해 알아가길 바란다. 건너고 건너다보면 어느새 다시 만나게 되듯 이 책의 사오싱의 풍경들과 항취들을 통해 따뜻함과 울림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