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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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부터 뒤샹까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화가 14명의 삶과 예술 세계에 대해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화가들의 대표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것에 담긴 화가의 정신, 미술적 기법 등을 작품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을 쉬운 언어와 서술로 풀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14명의 화가들은 그들이 태어난 배경이 부유하든 처절하게 가난하든지에 상관없이, 그들이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와 상관없이, 생전에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고통을 그들의 생 전반에서 감내해 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p.130 자기 신뢰야 말로 용기의 초석이고, 자기신뢰는 위험이란 요소와 친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용기란 고뇌하며 위험에 맞서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중략)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p.269 “아버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손은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중략) 나도 벽에 기대앉아 일생을 그렇게 살 운명이었을까? 혹은 물건이 담긴 통을 운반하며 살아야 했을까?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 했다. 하늘과 별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그래, 그것이 내가 찾는 것이다. (중략) ‘예술가란 무엇인가?’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p. 294 나는 뭔가 하고 싶은데, 그게 뭘까? 나는 뭔가 동경하는데, 무엇에 대한 것일까?”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겪은 고통과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이를 극복해낸 에곤 실레, 중독에서 오는 병마를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풀어낸 반 고흐,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삶을 버리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만의 창조적인 예술 세계를 찾아내기 위해 오지를 누빈 폴 고갱, 유대인으로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평생동안 추구해야할 사명을 찾고자 한 샤갈 등. 치열함을 넘어서 처절하기까지 한 그들의 행보는 독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한다.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사명을 다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견고한 관습과 편견에 자신의 몸을 던져 부딪히고, 무관심과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 철학을 고수해 나가는 화가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무거움과 삶을 살아 내는 것의 비장함을 알 수 있었다.

  2019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아흐레가 지났다. 거대한 세상과 삶의 일회성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축해 온 책 속의 화가 14명의 삶처럼 나 역시 올해엔  삶의 사명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의지적인 태도를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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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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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힘 좋은 남자와 해가 질 때부터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팔씨름을 해서 이기기도 하고,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두 번이나 잡았던 노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오랜 바다 생활을 통해 얻은 요령과 배짱.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살펴 주는 소년뿐이다.

 

 p.25

"할아버지 말씀대로 전처럼 여전히 힘이 세시다면, 그렇게 대단한 고기가 어디 있겠어요."

"생각만큼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요령을 많이 알고 있는 데다 배짱도 있지."

노인이 말했다.

 

 80일이 넘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노인은 먼 바다로 나가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길 고대한다. 큰 고기를 잡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자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는 깊은 바다까지 미끼를 올곧게 내려놓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큰 놈을 기다린다.

 

p.34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p.41

지금은 야구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한 가지 일만 생각할 때야. 그 일을 위해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가.

 

 기다림 끝에 노인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크기의 청새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녀석은 며칠 밤낮 배를 끌고 가며 노인에게 잡히지 않는다. 노인은 밧줄을 몸에 칭칭 감고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다.그의 사투는 자신의 불운을 비웃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도, 큰 물고기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그는 한 평생을 바다에 바쳐왔던 자기 삶에 대한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과 운명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해내기 위해 고기를 잡아야만 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오롯이 스스로의 몸만으로 거대한 물고기와 맞서야 하는 노인의 사투는 그의 신체를 극한에 몰아붙이고 묵묵히 자신을 도와주던 소년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독한 고독을 느끼게 하며 그를 포기하고 싶다는 절망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절망을 딛고 일어선다.

 

p.67

하지만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며칠밤낮 동안 이어진 긴 싸움 끝에 노인은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작살에 찔린 녀석의 피 냄새를 맡고 상어떼들이 몰려 온다. 노인은 절망하지 않고 오랜 시간 쌓아온 요령을 발휘해 배에 싣고 온 작살, 작살을 잃은 후엔 노와 칼, 그것들 마저 일은 후엔 막대기를 이용해 자신이 잡은 청새치의 살을 뜯어 먹는 상어들을 물리친다.

 

p.104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p.106

"자, 됐어. 난 여전히 늙은이야. 하지만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지는 않아." 그가 말했다.

미풍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고, 배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고기의 앞쪽 부분만을 보고 있으려니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p.112

"숫돌을 가지고 올걸 그랬어." 갖고 왔어야 할 것이 많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늙은이야, 넌 그것들을 가지고 오지 않았잖아. 지금은 갖고 오지 않은 물건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지금 갖고 있는 물건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

 

p.113

이제 난 상어 놈들한테 완전히 지고 말았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 너무 늙어서 몽둥이로 상어를 때려죽일 만한 힘도 없어. 그렇지만 내게 노와 짤막한 몽둥이와 키 손잡이가 있는 한 끝까지 싸워 볼 테다.

 

p.118

행운의 여신이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인데 누가 그것을 알아 본단 말인가? 어쨌든 어떤 모습의 행운이라도 얼마쯤 손에 넣고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값을 치를 테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을 건져 올리며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다. 상어떼에게 물고기의 머리까지 빼앗긴 후에야 그는 자신이 상어에게 졌음을 인정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일에만 힘을 쏟는다. 자신의 운명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바다와 맞써 싸운 노인의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 긴 싸움을 통해 노인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가를 따지기보다 의 사명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절망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과 운명을 지켜낸 노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삶의 역경을 헤쳐나갈 용기를 준다.

 

 목숨을 건 싸움 끝에 항구로 돌아온 노인에게 소년은 말한다.

 

p.127

"얼른 나으셔야 해요. 전 아직 할아버지한테 배울 게 너무 많으니까요. 또 할아버지는 제게 모든 걸 가르쳐 주셔야 해요. 대체 얼마나 고생하신 거예요?"

 

 노인은 소년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어 살아갈 모든 사람의 스승이다. 우리는 패배하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 두 손에 주어진 힘으로 끝까지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자. 뜨거운 햇살 아래의 바다에서, 캄캄한 바다에서 노인이 쇠약한 몸뚱이만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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