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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저주토끼>, <고통에 관하여> 의 작가 정보라.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는 정보라의 첫 '자전적' SF소설이라고 한다. 제목과 책 표지<강렬한 문어 그림!>부터 딱 재밌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책 맨 뒤편에 실린 작가의 말처럼 sf소설이지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작가님이 살고 있는 도시 '포항'을 배경으로 작가님의 가족과 작가님의 생활이 등장한다. 첫 소설<문어>부터 아주 골때리는데 '나'는 문어를 잡아 라면에 넣어 먹은 '위원장님' 때문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연행된다.
문제가 된 것은 위원장님이 잡아 먹은 문어. 🐙
문어의 정체는 외계 생물로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라고 말하는, 누가 봐도 수상한 문어를 '나'의 남편이 될 위원장님이 잡아먹는 바람에 심도 있는 조사를 받게 된 것.
이렇게 첫 소설 <문어>부터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까지 익숙한 해양 생물체가 사실은 외계 생물체로, '나'와 '위원장님'은 자꾸만 "외계" 해양 생물체와 얽혀 정체 모를 검은 양복 군단에게 연행된다.
🐙🦀🦈🐟🪼🐋
하지만 sf소설, 해양 외계 생물체 뒤에 숨겨져 있는 정보라의 진짜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마냥 웃기고 재밌지만 않다. 비정규직 문제,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 환경 문제, 생태계 파괴, 돌봄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전쟁과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이권 다툼 등 오늘날의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였다. 그러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사라져줄 수는 없었다.”
바다가 코앞인 포항에서 살고 있는 정보라 작가에게 ‘바다’가 주는 의미는 내륙에 사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도, 탁 트인 해변보다는 항구와 유희의 장소로 사용되는 인천 앞바다지만, 바다에 대한 애틋함이 크다.
그런 바다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해양 쓰레기가 섬을 이루고,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잠깐 걱정하다 잊어버리는 안일한 태도를 가졌을 뿐. 책 속에 등장하는 문어, 대게, 상어, 해파리, 개복치, 고래 외에 수많은 해양생물체의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이 곧 인간의 입장이 될 것임을 애써 외면하면서.
정보라 작가는 우리에게 바다와 세상의 여러 복잡한 문제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항복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한다. 마치 소설 속 ‘나’가 투쟁하고 연대하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 소금값은 벌써 몇 달 전부터 통제 불가능하게 치솟았다. 평생 먹을 소금을 미리 사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해수는 지구를 순환한다. 바닷물이 오염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 “
정보라 작가님의 가족의 이야기와 개인적인 이야기, 현실의 이야기와 외계 해양 생물체와 검은 양복 덩어리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누가 뭐래도 바다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항복하면 죽는다.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