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곧 콘텐츠이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 발전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어떻게 변혁시켜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면서 모든 산업 군에 적용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콘텐츠와 플랫폼, 상품과 장터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를 정리해보자. 사전적으로 콘텐츠(디지털 콘텐츠)는 유무선 전기 통신망으로 유통되는 자료와 정보를 총칭하고 플랫폼은 콘텐츠를 활용하는 기반을 이루는 시스템 환경을 의미한다. 플랫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접근하는 사이버 공간에 위치한 장터로, 콘텐츠는 각 상인들이 판매하는 상품 정도 된다.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자원과 유통이라는 두 가지 희소성을 바탕으로 시장 질서가 형성됐다. 시장에 새롭게 합류하고 싶더라도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와 기술력, 제한된 마케팅 채널과 유통 채널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상황은 컴퓨터와 저장기술이 발달하면서 급격하게 변했다. 저가 장비는 기술 편리성을 증대시켜 자원 희소성을 줄였고, 디지털 플랫폼은 마케팅과 유통 채널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콘텐츠를 공유하기가 간편해졌고(sharing), 소유하지 않더라도 접근이 용이해졌다(streaming). 유통 독점으로 소비를 통제하고 조정해온 시장은 콘텐츠가 불법 복제물 형태로 유포되면서(stealing) 시장은 근간부터 뒤바뀌게 된다. 생산과 유통 과정뿐만 아니라 각종 플랫폼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뒤바꿨다. 기술 발전은 생산자가 쥐던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넘겼으며, 경쟁은 자원과 유통을 독점에서 소비자의 욕구와 관심을 파악하기로 바뀌었다. 

플랫폼도 하나의 콘텐츠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이터는 산업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바야흐로 데이터 시대이다. 데이터의 양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고, 남에게 공유되지 않는 데이터를 쥐고 분석하는 사람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사례를 통해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량적 접근의 경쟁력이 입증됐다. 두 플랫폼이야말로 롱테일 상품(유명하지도, 잘 팔리지도 않지만 전체 판매량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의 시장성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시장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는 기술(니즈 파악)과 고객의 관심을 제어하는 기술(관심 제어)에 의해 움직인다. 소비자의 욕구와 관심은 데이터 분석에서 비롯되는데, 데이터는 상품을 제공하는 공간인 플랫폼에서 취합된다. 플랫폼은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취합하는 콘텐츠이다. 

책을 읽은 후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형화된 정보를 쉽게 접근하는 시대에는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비정형화된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 유리해진다. 『플랫폼이 콘텐츠다』에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사례로 소개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산업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IT 산업의 특징이 그간 '감'으로 유지되어온 시장에 정량화된 분석을 들이밀기이다.

손자의 유명한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번역하자면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몇 번을 싸우든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이다. 병법으로 유명했던 이 대가가 보기에 경쟁의 핵심은 정보(data)이다. 

[100자평] 플랫폼이 콘텐츠다

플랫폼이 콘텐츠다 - 음악 영화 출판 등 콘텐츠 사업의 미래
마이클 스미스 외 지음, 임재완 외 옮김, 조대곤 감수 / 이콘 / 2018년 7월

자원과 유통 창고의 희소성으로 유지되어온 독점 시장이 통신기술 발달로 어떤 변화를 겪었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강력한 무기로 거듭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으나, 곧 IT 산업이 손을 뻗는 모든 산업 군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르는 즐거운 산보

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간단 서평

구스타브 클림트는 모르더라도 '키스'라는 이름의 작품을 접해봤을 것이다. 번잡해 보이면서도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을 지녔다. 『클림트』는 이 독특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겐 생소한 분야였지만, 저자의 안내를 받아 빈의 거리에 남은 클림트의 발자취를 따라 산보를 다녀온 기분이다. 예술에 대한 감상평은 무리이니, 그나마 잘 하는 분석으로 서평을 대신한다. 

클림트 탐구는 크게 생애와 시대, 작품으로 구성된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애매한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으로 어디서든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사람이었다. 공공연한 비밀인 작품 모델들과의 관계, 열댓 명에 이르는 사생아들을 보건대 다분히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가 하면 평생 한 여성(에밀리)만을 갈망했고, 여행을 싫어하며 규칙적으로 일과로 정해진 시간에 작품 활동을 하는 성실함, 단테와 같은 고전들을 손에서 놓지 않는 면모도 보인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복잡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낭만주의가 임박했으나 구질서의 붕괴를 애써 외면하는 세기말 빈. (클림트,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20세기 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빈의 폐쇄적인 예술계에 변혁을 외쳤으나 고대로부터 해답을 모색한 면모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수성을 닮았다. 여느 천재처럼 그 또한 자신이 태어난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클림트의 천재성은 몇 세대만큼이나 차이나 보이는 시기별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젊은 나이에 성공을 안겨준 청년기에는 사진보다 섬세한 디테일이, 전성기에는 입체와 평면이 뒤섞인 황금빛 기하학이, 후기에는 동양에 관한 찬사와 죽음이라는 공포가 묻어나 휘발성 색조들이 돋보인다. 시기별 작품들을 나란히 뒀을 때 동일한 작가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뒤 평생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던 그는 운명처럼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뒤이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와 세계 대전으로 그와 그의 작품들은 잊히는가 하더니, 어느 순간부턴 매해 수십만 명을 불러 모으는 빈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황금처럼 찬란히 빛을 발하며. 

책을 읽고 비루한 예술사 지식에 몇 줄을 덧붙이게 됐다: 예술 작품에는 생각 이상으로 작가의 철학과 삶이 짙게 반영되며, 생애 동안 한 작가에게서 극단적인 화풍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일본이 19세기 유럽 예술계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했다.(이와 관련된 서적도 언제 읽어봐야겠다) 각각은 맛깔스러운 설명과 함께 본문에 소개되니 궁금한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Just do it!

다동력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임박했다. 우리 삶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중이다. 정보통신과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산업 간의 장벽을 붕괴시키고, 기계가 많은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한 분야에 최적화되기보단 폭넓은 영역을 두루 아우르는 인재가 요구된다. 한 분야에 정통한 인재로 교육받아온 우리에겐 사뭇 당혹스러운 소식이다.

매정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최근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들려오는 교육과정 반성은 이런 흐름을 명백히 뒷받침한다. 정형화된 교육과정이 시대착오적이며, 격변하는 산업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력을 양성하는데 자원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한 가지 일에 꾸준히 임하기보단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 내는 힘을 다루는 『다동력(多動力)』이 '장인'들의 나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궁금해졌다. 멀티태스킹의 비효율성을 경고하는 뇌과학 서적들과 달리 산만함을 권장하는 책이라니.

책 구성은 깔끔하다. 전반부에선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다동력'을 정의하고 당위를 분석한다. 후반부에선 구체적 방법과 저자 자신이 실천을 통해 얻은 통찰을 나열한다. 요지는 간단하다. (조금은 실망스럽게도) '다동력'은 대량의 업무를 소화하는 비법이 아니다. 삶의 1분 1초를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자 철학이다. 획일화된 형식이 해체되고 재현성 높은 직업이 가치를 잃는 시대에는 모든 일을 홀로 하려 하기보단 아웃소싱과 네트워킹을 활용해 불필요한 자원과 노동력 낭비를 최소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집단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하지만 깔끔하다. 저자가 추구하는 가치처럼 핵심을 정확히 짚고 각 단원별로 원 포인트 실천법을 서술해 읽기 편하다. 자신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억지스럽거나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박식한 인재(polymath)의 중요성과 함게 자기중심 갖추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균형을 잘 잡는다. 격변하는 시대를 앞둔 우리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던진다. 도태될 것인가, 선두에서 이끌 것인가.

서평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점들의 연결(connecting the dot's)'이라는 비유로 유명해진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를 다시 찾아봤다. 요약하자면 당시에는 전형적인 성공 공식에서 벗어난 자신의 방황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노라는 회고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로 마무리되는 그의 연설처럼, '다동력'의 저자 또한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규제하는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박이부정(博而不精),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 없다'와 같은 말들이 더 이상 험담이 아닌 시대에, 열두 가지 재주를 어떻게 익히고 발휘할지 궁금한 모두에게 추천한다.

[100자평]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된 현 시점에서 저자는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란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어떤 대통령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어본다. 최대한의 중립성을 지향하며 평생을 통해 겪은 18명의 대통령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