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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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2살의 나이에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는 아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고 싶은 거 많고 궁금한 거 많은 그 시절,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하고픈 나이이지, 착하게 좋은 사람으로 자라야지 라고 말이다.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아마도 주인공 엘리의 환경은 그 어린 아이를 어쩌면 그다지 어리지 않은 한창 사춘기를 겪을 지도 모르는 나이의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았다.

일단 사는 지역부터 아이들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에는 다소 불안정했다. 물론 개천에서 용이 난다라는 우리옛말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을 뜻하지 인격적인 의미는 다소 떨어진다. 엘리가 사는 동네는 이민자들과 마약 거래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새아빠 라일은 마약 거래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그들 역시 마약 중독자이다.

 

하는 일이라곤 책 읽고 술 마시는 것밖에 없는 아빠.

한때 변호사를 꿈꿨지만 마약에 빠진 엄마

말을 잃고 허공에다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형

엄마를 마약에 빠지게 한 장본인 혹은 엄마의 구원자 새아빠.

전설의 탈옥왕이자 베이비시터인 이웃 할아버지.


 

등장인물들을 보라. 어디 하나 멀쩡한 사람이 있는가? 

결단코 아주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환경에서도 엘리가 버텨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각자 나름 대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슬림 할아버지와 형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 형은 6살 이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그저 하고픈 말을 의미를 담아 허공에 손으로 그려댈 뿐이다. 그는 텅 빈 곳으로 오른손 검지르 쭉 뻗어 글자와 문장을 휘두르고 긋고 쓰며 메모와 감상과 일기를 남긴다.하지만 그가 그려대는 그 메세지는 이 이야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형을 엘리는 사랑한다. 형은 나를 닮았지만 나보다 낫다. 더 강하고, 더 아름답고, 얼굴 전체가 매끄럽다. 달 웅덩이 속의 얼굴처럼 매끄럽다 고 표현한다.

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 소년. 우주를 삼키다. 케이틀린 스파이스


 

- 슬림할아버지는 전설의 탈옥수지만 엘리와 엘리의 형에게는 좋은 친구이다. 택시기사를 45구경 콜트 권총으로 잔인하게 때려 죽인 죄로 그는 "택시 기사 살인범"이라 불렸다. 하지만 엘리가 만나 슬림 할아버지는 착한 사람 같았다. 그는 할아버지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인자라면 지하 독방에 갇혀 버티지 못했을 거다. 할아버지는 인생의 절반을 감방에서 보내놓고 살인범이냐는 엘리의 질문에도 픽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할아버지 역시 엘리가 고작 12살이지만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운전을 가르치고 남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이야기까지 해주기도 한다. 슬림할아버지는 온몸 구석구석에 암이 퍼져 마지막을 병원을 수없이 들락거려야만 했다. 엘리 역시 시간이 나느 대로 병문안을 가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엘리를 돕는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에 잠입하는 것을 도운 그는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시간에 당하기 전에 시간을 헤치워버려. 너의 영원한 친구. 슬림"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할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는 거다. 

내가 아는 건 할아버지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둠은 할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경찰은 할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간수들은 할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창살도, 독방도, 블랙 피터는 할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 내 생각에 할아버지는 착한 사람 같아요. 할아버지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기 원에 못 미치면 살인자라고 소리도 질러대는 어린아이 엘리.

 

이야기의 흡입력은 성장소설이라기 보다 하나의 범죄스릴러 물 같았다.

하긴 주인공 엘리의 꿈이 범죄 기사를 쓰는 기자였으니 어쩔 수 없는 지도 모르겠다.

줄거리는 스포가 될 것 같아 남기지 않지만, 그 흡입력은 엄지짱이다.

12살에서 19살이 되면서까지 엄청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가령 검지 손가락이 잘린다던지, 엄마가 교도소에 들어간다든지, 칼에 찔리다든지. 의문의 벙커와 빨간 전화기.

마지막에는 읽으면서도 소름이 끼치고 역겹고 잔인하고 믿기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고, 때때로 조금 망상적인 부분도 없지 않은 느낌이었다.

7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읽으면서 성장 소설이라고 느낀 부분은 아마도 다 읽고 나서의 내 감정인 것 같다. 그만큼 짜임새와 구성이 탄탄한 소설이고,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결국에 정의는 이긴다. 정의롭게 되기까지 지켜준 나름대로의 믿음과 사랑들이 고맙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실컷 두둘겨 패놓고는 우는 엘리에게 새아빠 라일아저씨는 말해주었다. 


아마 이것이 그의 방식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며칠간 갇혀 몸부림 치고 나와서도, 교도소에서도, 다시 만나서도 말한다. 

"우리 다 같이 안자"   

그리고 형 오거스트는 속삭인다.

"괜찮을 거야. 엘리 괜찮을 거야. 넌 돌아와. 항상 돌아오니까."

 

출판사로 부터 책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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