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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평점 :
우리 나이대의 많은 사람들이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자랐을 것이다. 아주 팬이었던 기억은 없지만, 나 역시도 만화책을 열심히 모았고 그 후속작? 같은 인물 소개 만화도 열심히 읽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까지 따라잡고 신화에 대한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산 지 어언 n년… 좋아하는 배우들이 연기한 작품의 원작을 읽으며 다시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얇은 희곡들만 읽던 가운데, 영화 <오디세이>의 개봉과 함께 <오뒷세이아> 붐이 불기 시작하며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국내에는 개봉을 하지 않았지만 작년에 어쩌다가 <오뒷세이아>의 극히 후반부, 즉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온 이후의 일을 다룬 영화를 봤기에 그러한 호기심이 생겨났던 것 같다. 신화를 판타지와 어드벤처 쯤으로 생각하다가, 신화적인 요소를 싹 제거한 채 전쟁을 겪은 인간의 고통을 그려낸 그 영화를 보며 인간은 신화를 왜 만들어냈을까? 왜 이런 내용의 신화를 만들어냈을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합쳐져 이번에야말로 <오뒷세이아>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거의 처음으로 서평단 신청을 해봤는데 우연히 당첨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 서평을 쓸 때 이 말만은 해야겠다고 결심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횡격막’의 향연이 바로 그것이다. 그 전까지는 맥락에 따라 이성이나 인간의 내면과 같은 단어로 번역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원문의 어원을 살려 횡격막으로 번역하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횡격막은 숨을 쉴 때 필요한 신체적 기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품성을 주관하는 기관이기도, 때로는 사람의 기질을 반영하는 기관이기도 한 것이 재밌었다.
차치하고, 한 영웅의 일대기보다는 고난을 수용하며 집으로 귀향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었다. 마치 유명한 이 구절과 같이 말이다.
“참아라, 염통이여. 더 개 같은 다른 일도 넌 참아 냈으니,
그날에, 기세를 주체 못하는 퀴클롭스가 먹어 치웠을 때,
네 굳센 동료들을. 하지만 넌 견뎌 냈다, 너를 지략이
석굴에서 꺼내 줄 때까지, 너는 죽겠구나 생각했지만.” (p. 640)
시간 상 전작에 해당하는 <일리아드>에서 오디세우스는 꾀를 발휘하는 모습이 강조된다. 실패하긴 했지만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쓰는 모습이나, 트로이의 목마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모습 등이 그렇다. 물론 <오뒷세이아>에서도 그런 모습이 드러나기는 하나, 그보다는 신의 분노를 맞닥뜨리고도, 칼립소의 유혹을 맞이하고도 견디는 모습이 강조된 것이 좋았다.
한편으로, <오뒷세이아>의 주인공은 오디세우스이긴 하나 그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전쟁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텔레마코스가 대표적이다. <오뒷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지만, <오뒷세이아>는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집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심지어 꽤 길다. 황폐해진 이타카를 보고 분노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오디세우스의 전우였던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찾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길게 묘사된다. 아버지의 부재 동안 아들은 성장했지만 아직은 미성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은 어떻게든 아버지의 존재 여부를 알아야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과정에 몇 권을 할애한 것 아닐까 싶었다. 또 하나, 사실상 오디세우스가 집나가서 온갖 고생을 다 하게 만든 트로이 전쟁의 표면상의 원인이었던 헬레네에 대한 표현이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헬레네는 “슬픔을 없애고 담즙을 풀고, 모든 나쁜 일들 잊게 하는” (p.181) 약을 먹는다. 현대로 따지면 사실상 항우울제 겸 수면제 아닌가 싶은데, 설령 전쟁의 원인이 된 여성이라 할지라도 전쟁의 상흔과 죄책감이 남았다는 묘사로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남편의 부재와 그로 인한 구혼자들의 구혼을 견뎌야 했던 페넬로페, 그리고 왕의 부재로 황폐화된 이타카와 궁정 식구들의 모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전쟁을 기획하는 극히 일부분의 사람에 비하여 전쟁이 가져다주는 고통의 범위와 깊이는 그에 비할 수도 없이 넓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천 년 전에 쓰인 서사시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오늘날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전은 고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