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이윤기의 영웅 이야기 1
이윤기 지음, 최용호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신화나 판타지소설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몰입자체가 안돼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윤기씨의 그리스로마신화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이 화제일때도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윤기의 영웅이야기 헤라클레스를 읽으며 이런 내 편견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알게 됐다. 신화는 단순히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때론 불가사의하고 해석불가능한 우리 삶을 설명하는 가장 근원적인 통찰이며 은유라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 듯한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의 아들로, 그것도 어마어마한 힘을 타고난 헤라클레스는 마치 경쟁도 노력도 필요없는 삶을 타고난듯 보여진다. 그에겐 인생의 비애와 갈등이 비껴가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의 삶은 그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또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다. 내가 그저 힘센 영웅으로 알았던 그는 너무나 가슴아픈 인생을 치열하게 살다간 한 사내였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스승과 아내는 물론 세아들까지 여러번의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다 그 타고난 힘때문이었다. 남들에게는 부럽기만한 천부적인 재능이 그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고통의 원천이 된 셈이니 정말 알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다. 자신의 죄를 씻기위해 아르고스왕을 찾아가 12년동안 종살이를 하는 헤라클레스의 삶을 들여다보고있자니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고개를 넘었다 싶으면 또다시 기다리고 있는 더 높고 험난한 산들, 희망이 보이지않는 삶을 그는 불평없이 묵묵히 헤쳐나간다. 불가능해보이는 12가지 임무를 해결하고 아르고스왕에게서 벗어난 헤라클레스는 그러나 실수투성이 인간의 삶을 대변하듯 또다시 술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과부여왕 옴팔레에게 팔려가 또 3년동안 종살이를 하게되는 헤라클레스, 하지만 배꼽이라는 의미의 옴팔레 여왕과 있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마치 어머니와 이어져있는 뱃속아기처럼 태어나 처음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사명과 의무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처럼 지낼 수 있었다. 이 시간이 있었기에 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헤라클레스가 그리스로 돌아오는 길에 케르코페스 형제를 만나 실랑이를 벌이다 웃기시작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처구니 없다는 듯 피식 웃다가 껄껄껄 웃다가 뒹구르며 눈물까지 비치며 한참을 웃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는 헤라클레스는 이제 삶의 고통과 번뇌에서 해탈한 듯하다. 고된 역경을 헤치고 영웅으로 금의환향해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줄기 눈물로 지난 세월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노래한 싯구가 떠오른다. 헤라클레스는 나라를 얻은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여인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과응보라는 말을 되새기듯 자신이 무찌른 괴물 휘드라의 독에 의해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죽음의 고통속에서 헤라클레스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자기 자신을 불태움으로서 이 업보같은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그가 왜 몇 천년동안 가장 사랑받는 영웅으로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다. 그는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과제를 헤쳐나가며 스스로 영웅의 반열에 올랐고 영웅으로서의 삶에 집착하지않고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에 별중의 별이 될 수 있었다. 이윤기씨의 이런 속담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잔잔한 바다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사는동안 어떤 고통과 아픔도 나는 비껴가주기를 바라고 아이들이 시련을 이겨내며 자라기 보다는 온실속에서 성공의 길만 밟게 되기를 바라는 요즘, 그래서 더더욱 영웅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페이지는 두툼하지만 쉽게 써준 작가 덕에 초등고학년부터라면 읽기도 어렵지않다. 최용호씨의 그림과 중간중간 삽입된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명화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좋다. 몇 년전 광풍이었던 만화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고 신화의 재미를 느꼈던 학생들이 이제 이 책을 읽고 진정한 영웅의 의미와 삶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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