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안티고네 작품분석 안티고네 -서평
희곡안티고네 작품분석 안티고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극작가인 그리스의 소포클레스(B.C. 49
6-406)는 또한 범죄와 처벌에 관해 가장 먼저 중요한 저작을 남긴 문학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123편의 희곡 가운데 `안티고네`는
B.C. 442년에 초연된 이래 오늘날까지 계속 공연되고 있으며, 많은 중요한 사상가들에게 끊임없이 연구대상이 되어온 작품이다.
`안티고네`의 무대는 그리스의 테베다.
라브다코스왕족에게 내려진 신의 저주는 라브다코스왕의 손자 외디푸스로 하여금 본의 아니게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만들었다.
외디푸스는 자기 어머니와 성관계를 갖고 그 사이에서 네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은 아들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딸들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였다.
이오카스테가 자살하고, 외디푸스가 스스로 자기 눈을 뽑고 왕국을 떠난 뒤, 왕국의 지배권은 두 아들들에게 떨어졌다.
에테오클레스는 동생 폴리네이케스를 누르고 왕위에 올랐지만, 왕국에서 쫓겨난 폴리네이케스는 여섯명의 제후를 끌어들여 테베를 공격해왔다.
두차례의 전쟁 끝에 둘은 서로를 죽이고야 말았다.
그리고 왕위는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이자 외디푸스의 처남(또는 외삼촌)인 크레온의 손에 넘겨지게 되었다.
크레온은 애초에 에테오클레스의 편이었고, 폴리네이케스의 반란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레온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내린 첫번째 칙령은 에테오클레스를 후하게 장사지내되,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개와 새의 밥이 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명령을 위반할 시에는 누구건 돌로 쳐죽이는 형벌에 처하겠다고 선포했다.
외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입장에서 폴리네이케스는 내란을 일으킨 역모자가 아니라 다같은 핏줄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죽은 자를 묻어주는 것은 신의 명령이었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묻어주었다.
원래 안티고네는 동생 이스메네에게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스메네는 거절했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이 보낸 감시자에게 붙잡혔을 때 이스메네는 자기도 같이 했다고 주장했다.
안티고네는 외쳤다.
"넌 안 할려고 했잖아 나 혼자 한 거야. 나 하나만 죽으면 돼. 넌 죽으면 안 돼."
크레온의 칙령에도 형식상의 하자는 없었다.
그의 명령은 안티고네 한사람만 찍어서 한 것도 아니었고, 전쟁으로 어지러워진 국가질서를 수습하기 위해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 내린 것이었다.
시민들도 물론 크레온에게 약간의 저항을 하긴 했다.
크레온이 자기 명령을 집행할 사람 누구 없냐고 하자,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안티고네가 끌려왔을 때 크레온은 물었다.
"너 그거 하지 말란 말 못 들었어 " 안티고네는 답했다.
"알고 있었어요." 크레온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감히 법을 어겨 " 그러자 안티고네는 답했다.
"그건 제우스의 뜻이 아녜요. 비록 아무데도 써져 있지 않지만, 영원한 신의 뜻이 더 우선이에요."
일이 더 꼬인 것은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이 안티고네의 약혼자란 것이었다.
하이몬은 자기 아버지 크레온의 독재를 대놓고 비판했다.
"오직 한사람만이 맘대로 하는 건, 그건 국가도 아닙니다." 그러자 크레온은 더욱 화가 났다.
"이년(안티고네)을 죽여라. 이 요망한 것을 끌어내라! 자기 신랑 보는 앞에서 죽게 만들어라." 그러자 하이몬은 외쳤다.
"제 눈 앞에서 죽게는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실 거면 절 다신 볼 생각 마십쇼."
시민들은 안티고네를 죽이지 말고 산 채로 바위굴에다 가두라고 크레온에게 요구했다.
이를테면 정상을 참작한 감형인 셈이었다.
이후 늙은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다시 크레온의 심경을 거슬렀다.
제사를 지냈는데 그 어떤 신도 제물을 안 받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크레온은 원로시민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원로시민들은 안티고네를 풀어주고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주라고 충고했다.
크레온은 이제 스스로 자기 명령을 어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주었다.
하지만 크레온이 바위굴에 가봤을 때 안티고네는 이미 목매어 자살한 시체가 돼있었다.
하이몬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자기 아버지 보는 앞에서 칼을 빼어 자기를 찔러죽였다.
크레온이 죽은 아들의 시체를 안고 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기 아내 에우리디케 역시 칼로 자살하고 난 뒤였다.
`안티고네`는 그리스의 모든 비극이 그런 것처럼 인간과 신의 대질을 그 테마로 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경험가능한 인간세계와 관조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영역 천상계의 대결이다.
크레온이 선포한 명령은, 아무리 잘못한 일을 한 자라도 인간으로서는 존엄하므로 보통사람과 똑같이 묻어줘야 한다는 하늘의 명령에 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크레온은 이 자연법적 명령에 반항함으로써 자기 권력을 과시하려 하였다.
권력은 남용되었고, 그는 결국 자연법을 어긴 결과 나중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실정법까지 스스로 어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내와 자식을 잃고 권력까지 잃고서 그는 죽은 바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받은 형벌이었다.
안티고네는 오늘날 많은 법철학자들에 의해 확신범의 원형으로서 평가받는다.
현행 실정법질서란 그녀에게 있어 신성한 하늘의 뜻에 비하면 하위에 놓일 뿐이었다.
독일의 유명한 법철학자인 샤데발트는 이렇게 평했다.
"안티고네는 패했다.
하지만 그 패배 속에서 승리했다." 또 다른 독일의 법철학자인 뮐러는 이렇게 말했다.
"안티고네는 더 위대한 자연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평범하고 인습적인 자연 속에서 고통받았다.
여기에 안티고네의 비극성이 있다." 여기에 독일의 대표적인 법철학자 라드부르흐는 이렇게 덧붙였다.
"안티고네에서 실정법상 하자 없는 크레온의 요구에 안티고네의 초실정법적인 양심의 확신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안티고네는 최초의 참여적 저항적 여성상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내 인생에 그 어떤 여자도 나를 지배할 수 없어. 여자 앞엔 절대로 굴복 당하지
마. 굴복 당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남자한테 굴복 당하는 게 나아. 최소한 여자한테 졌다는 말을 듣지는 않을 테니까"하고 외쳐대거나 아들 하이몬에게 "여자의 노예" "여자말이나 듣는 녀석"이라고 쏘아붙이는 크레온은 오늘날 여성운동가들이 말하는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남성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눈엔 아들의 순수한 사랑까지도 남녀간의 권력관계로만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안티고네를 이렇듯 자연법의 수호여신으로만 미화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태도일 수 있을까 이는 법학과 철학은 알아도 문학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그리스비극은 매우 냉혹하고 객관적이며 조잡한 권선징악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헤겔이 정확하게 지적했듯 안티고네는 핏줄의 법은 보았어도 국법은 보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이미 중용을 상실했다.
그녀는 즉자적이거나 대자적일 수는 있었어도, 즉자.. -서평
..... (중략:첨부파일 클릭 바랍니다)



제목 : 희곡안티고네 작품분석 안티고네 -서평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4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희곡안티고네 작품분석 안티고네
파일이름 : 희곡-안티고네 작품분석 안티고네.hwp
키워드 : 희곡안티고네작품분석안티고네,희곡안티고네,작품분석,안티고네
[관련자료]
-
위인전기 - 이중섭 위인전기를 읽고 이중섭을 읽고-
위인전기 - 백범일지-
위인전기 - 나폴레옹을 읽고 나폴레옹-
열 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읽고 나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