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6펜스34 -보고서
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6펜스34
1차 독서감상문
<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 6펜스’. 전혀 조화되지 않은 역설적인 듯한 이 제목의 난해함은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이 작품이 고갱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아 재구성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책이 나에게 준 흥미는 적지 않은 것이었다.
고갱, 후기 인상파 화가 중 한사람으로서 훗날 야수파에 영향을 준 강렬하고 도발적인 색채의 향연을 이루었던 화가이다.
이전에 고갱의 그림을 보면서 ‘ 왜 이렇게 못 그렸지 ’ 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단순히 기교적인 측면을 벗어나서 고갱의 작품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그의 사상을 알아내고 싶었다.
‘달과 6펜스’ 가 고갱의 전기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자취를 따라감으로써 고갱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예술 지상주의로써 이 작품은 일관된 전개를 펼치고 있다.
고갱의 대리인으로서 등장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우리 일상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세속적 인물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증권 중개인으로서 사회적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며, 예술과는 담을 쌓은 무취미한 사람이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항상 반전이 존재하는 법이다.
스트릭랜드는 어느 순간 홀연히 가정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며, 그는 예술의 위대함에 홀려 무엇인가에 끌려가듯이 점점 자기 세계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나는 범(凡) 과 비범(非凡)의 차이를 보았다.
내가 생각할 때 인간은 누구나 개성의 바탕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있으며, 이 가치는 항상 그들속에 내제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대명제 속에는 이렇게 양면적인 사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에 의해서 일정한 의무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기도 하지만, 또 그 사회 때문에 궁극적 가치의 추구는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사회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형언할 수 없는 예술의 위대함을 좇아 그림을 그렸으며, 그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던 것은 순수한 ‘정열’ 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파리에서의 스트릭랜드의 생활을 통해 금전적 가치와 예술의 가치의 경중(輕重)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스트릭랜드는 거의 무일푼으로 런던을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파리에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사랑은 위기가 닥쳐오면 더 간절해지듯이, 스트릭랜드의 예술세계는 가난에 저항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가난을 지배하는 듯한 절대적 신앙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계속되는 가난 때문에 육체적으로 병마에 시달리게 되고, 이 시기에 그는 다행히도 생명의 은인인 스트로브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스트릭랜드와 같이 그림을 그리며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번에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의 비참함의 끝을 그려낸다.
아마도 작가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희생보다 진정한 예술에의 추구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그러한 인간의 희생과 예술의 완성이 반드시 양립해야만 하는 불가분의 관계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를 위해 헌신하면서 겪게 되는 희생을 잠깐 언급하자면 먼저 금전적 희생이 있다.
그가 갖고 있던 많은 돈을 스트릭랜드를 보살피면서 쓰게 되고, 그 다음으로 그의 부인 블랑쉬는 스트릭랜드와 사랑에 빠져서 그와 동거하다가 배반당해서 음독자살을 한다.
그런 희생을 통해서 스트로브가 얻게 되는 것은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으로부터 받은 충격과 감동의 여운 뿐이었다.
진정한 예술은 이렇게 비참한 희생을 요구하는가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가 자기 부인인 블랑쉬의 나체 그림을 그린 것을 보고 분노하는 반면, 또다시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여 모든 원한을 잊고 오히려 그에게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스트로브도 스트릭랜드 못지않게 화가의 정열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예술의 천재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마도 작가 또한 스트로브와 스트릭랜드를 대비시키면서 예술의 완성은 단순히 정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려고 했을 것이다.
예술이란 스트로브에게는 결여된 천재성, 즉 남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원초적인 통찰력으로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진지한 주제에서 잠시 벗어나서, 이야기의 각 부분에서는 작가가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여성에 대해 신랄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풍자를 해 놓는다.
스트로브의 부인이 스트릭랜드와 동거하게 된 이유가 정욕 때문이며, 그것이 여성의 본성일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나, 나중에 스트릭랜드가 죽고난 뒤 유명해지자 처음에 그를 저주했던 아내가 갑자기 돌변해서 자신은 천재의 처라는 것을 들먹이며 남편의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등의 풍자는 현대사회의 가치관에 따르자면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더구나 스트릭랜드가 타히티 섬에서 결혼하게 되는 아타라는 여인도 부인으로서의 존귀함으로써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릭랜드에게 헌신적으로 정신을 바치는 예속적인 존재로서 더 부각시킨다.
언젠가 내가 7막 7장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홍정욱은 자신의 포부를 행복이라는 여성적인 단어에 속박시키지 않는, 형언할 수는 없지만 더욱 원대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달과 6펜스에서도 작가는 행복한 가정, 또는 여성이라는 성격의 것들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내비쳤다.
하지만 작가가 어떤 의도로 가정이나 여성의 가치를 그렇게 묘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순수한 예술추구의 위대함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작가의 평소 사상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되돌아가서, 타히티 섬이라는 배경을 도입함으로써 예술의 필요조건을 하나 더 알 수 있었는데, 바로 ‘환경’ 이었다.
여기에는 자연적, 사회적 환경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통하는 듯하다.
스트릭랜드가 런던과 파리에 있을 때는 그의 폐쇄적 행동 때문에 모난 돌과 같은 존재였으나, 모든 가치관과 행동양식이 인정되고, 순수한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타히티 섬은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공간이었고, 작가 또한 그러한 예술에 있어서의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듯하다.
아마 여기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 감정의 순화, 인식의 메커니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과 사상의 표현인 예술에서 그러한 변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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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6펜스34 -보고서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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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목 : 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6펜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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