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묵직한 소설을 한 편 읽었다. 지금 읽기에는 다소 흥미가 덜할지 모르나 박경리의 소설은 당시의 어떤 작가의 소설보다 재미있고 서사가 뚜렷하다. 토지를 끝까지 다 읽겠다는 꿈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지만 김약국의 딸만은 꼭 통독하고 싶었다. 물론 이 소설 역시 요점의 경장편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끝까지 읽어내기 힘든 분량일지도 모르겠다.

 

한실댁의 다섯 딸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인데 다들 불행한 결말을 맞아 분위기가 무겁지만 인간의 복잡하고 끊임없는 욕망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오래 전에 쓰여진 작품(1890년대~1930년대를 배경으로 함)인데도 돈을 탐하고 욕정에 허물어지는 것은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불행한 가족의 운명은 그 어떤 질긴 운명을 타고 난 것처럼 보인다. 마치 모두들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것처럼 몰락해가는 과정이 급류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바다와 관련된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되었는데 욕심이 과해 바다와 연루되었고 김약국의 딸 중 하나인 용옥은 뱃길에서 죽는다. 운명론적인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초반부터 어머니의 자살로 시작된 이 소설은 불행이 전염되듯이 마지막에도 죽음이 등장한다. 하지만 커다란 스케일에 압도되어서인지 첫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김봉룡이란 인물에 관심이 갔다. 선비같은 형과 다르게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그는 결혼 전에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가 찾아오자 죽이고 도망간다. 하지만 선비의 풍모를 지닌 그의 형 김봉제 역시 사는 게 순탄치만도 않다. 독사에 물려 죽고 마니 말이다.

 

통영이라는 아름다운 도시 역시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어디로 흘러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바다처럼 인간의 감정과 욕망도 제멋대로 흘러 비극을 부른다. 다시 한번 토지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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