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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노벨문학상 작가는 소설을 어떻게 쓸까? 이 책은 그가 하버드에서 한 강연을 묶은 거라는데 재미있는 화법 때문인지 술술 잘 읽혔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강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의 <순수박물관>, <재와 빨강>을 읽었는데 순수박물관은 너무 강한 집착을 보이는 주인공 때문에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재와 빨강>은 감탄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뜻밖에도 오르한 파묵은 처음엔 작가가 아닌 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천재적인 화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문학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또 뜻밖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가 소설공부를 ‘독학’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느 작가나 오랜 시간 자신만의 골방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있겠지만 한국의 경우 문예창작학과 같은 소설창작방법을 알려주는 학과가 있고 이런저런 문예아카데미가 있는 것처럼 파묵 역시 그런 곳에서 공부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학을 공부했고 당시 터키에는 소설을 가르치는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18살에서 30살까지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한권씩 빼내 읽어대기 시작한다.
그가 말한 소박한 독자와 성찰적인 독자의 의미가 기억에 남는다. 소박한 독자란 책을 읽고이 책이 작가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성찰적인 독자는 작가가 그런 것까지 감안하고 전략을 갖고 소설을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작품을 놓고 책을 읽을 때 소박한 독자의 독서와 성찰적인 독자의 독서는 결과가 완전히 다를 것이다. 파묵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자란? 두 가지 모두가 잘 조화된 독자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쓰여지는 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독자의 반응까지, 내적으로 이뤄지는 반응까지 예상하고 쓰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을 쓰는 일이 아주 어려운 예술적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기술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할 테지만 기술이 없이는 형태를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장인은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니 작가지망생이라면 이 책을 얼른 읽고 자신만의 비법을 만드는 바탕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