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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예중앙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거대한 한편의 서사시처럼 읽히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엄숙한 기분이 들게 했다.
화려한 수사구가 난무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노인과 바다가 연상되었는데 인간과 동물의 싸움은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없는 싸움일 터다.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 읽는 것 같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는 이탈리아사람들의 한을 표현한 작품을 썼다고 하니 찾아 읽어보고 싶다. 책의 여백만큼이나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 책은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를 느끼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같은 작품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 가을에 집어 들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는 서사가 치밀한 글을 많이 읽어서인지 천천히 쉬어가며 읽을 수 있는 이 책이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다. 최근의 소설들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여백없이 펼쳐지는데 이런 소설의 경우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고독하고 애절한 분위기가 풍기는데 작가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전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에서 두 가지 존재인 산양왕의 의미와 나비가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왜 그토록 양중의 왕인 산양왕과, 양을 잘 잡는 왕인 산양왕이 싸움을 거듭하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인간 산양왕이 왜 그렇게 고독한 삶속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순간에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들일까?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책을 펼쳐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