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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먹먹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생전의 안네프랑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인 베르테 메이에르는 안네 프랑크의 이웃에 살았고 같은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소녀였을 뿐 이 책에서는 안네프랑크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역시 안네 프랑크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르테 메이에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안네프랑크가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네프랑크가 살아남았다면 그녀 역시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책을 썼을 것이고(그녀는 작가가 꿈이었으니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을 것이다) 분명히 수용소의 기억과 관련된 상처에 대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나는 학창시절에 읽었던 <안네의 일기>의 표지에 나온 안네를 이 책의 저자와 동일시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저자는 어린 나이에 여동생과 단 둘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같은 처지인 고아들과 함께 고아원에서 살게 된다. 그곳에서 베르테 메이에르는 여동생을 기다리는데 동생이 죽으면 혼자 남는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며 동생의 완쾌를 기원한다. 다행히 동생은 언니에게로 돌아와 함께 살게 된다. 그곳에는 불문율이 있다. 수용소에서의 일들을 입밖에 내지 않는 것.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때 그들은 그 일들을 소리내어 말하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울었어야 했다. 상처를 봉인해야 했던 어린 소녀들은 평생 그때의 기억들로 인해 고통받게 된다. 그곳에서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는 상처는 아닌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친척들이 그녀를 찾아오지만 그들을 떠맡아 키우려는 친척은 없었다. 소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지지였을 텐데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이야 온갖 체계화된 심리치료가 제공되겠지만 당시의 전문가들도 전례가 없는 일을 겪은 아이들에게 어떤 치료를 제공해야 할지 몰랐던 모양이다. 고아원 생활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 나이어린 두 소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제공되진 않았다. 그런 부분들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지만 내 앞에 그런 일을 겪은 소녀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 역시 전전긍긍했을 것 같다. 그들의 친척이,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맡으려 하지 않은 것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그녀의 삶은 흘러간다.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첫키스를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이혼도 한다. 그녀는 음식평론가가 되어 자기 일에서도 인정을 받지만 노년에는 질병에 시달린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과거의 경험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수용소에서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음식평론가가 되었을지도 모fms다. 마음의 병은 기어이 몸에 병을 낳았다. 그녀는 책의 후반부에서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며 죽는 날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이 책이 매우 솔직한 태도로 쓰여졌다고 생각하며 감상적으로 쓰이지 않고 저자가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본 점이 좋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전쟁의 잔인함을 느낀다. 책은 어두운 기억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녀가 성장해가는 모습이, 과거의 기억과 싸우는 모습이, 사람들과 관계맺는 모습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에 그녀의 어두운 기억이 함께하고 있다.
베르테 메이에르의 이야기는 이렇게 하나의 책이 되어 출간되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리고 안네 프랑크를 포함한 수많은 안네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