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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전해 준 쪽지 ㅣ 탐 청소년 문학 4
게리 폴슨 지음, 정회성 옮김 / 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최대한 적은 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이런 목표는 사춘기 시절 누구라도 한번쯤은 세워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나도 아마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던가.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절친한 친구들과도 무언가 가치관이 벌어지던 때,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져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무인도에서 개이건 물개이건 간에 동물과만 교류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람이란 이기적이게 마련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최소한의 사람과 관계맺는 것이 껄끄러운 일에 휘말릴 기회를 애초에 차단하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그런 시기를 보내는 중인 것 같다. 방학이 되어 그가 결심하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수를 열명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하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최대한 외출을 제한하면 길거리에서 학교친구를 만날 일도 없다. 책을 좋아하는 핀으로서는 책을 옆에 쌓아두고 읽기 시작하면 그리 외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집안에 주로 틀어박혀 있는 핀에게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가발을 쓰고 다니는 조해나는 암투병중인 환자로 매력적인 누나다. 그녀의 뜬금없는 정원만들기 제안에 핀은 한마디 거절도 못하고 그녀와의 ‘관계’에 얽혀버린다. 핀의 폐쇄적인 생활에 조해나 한명쯤 더 허락하는 것은 별것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허락한 이후로 또다른 많은 관계가 가지에 가지를 치듯이 늘어나버린다. 일단 그녀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모금활동을 하게 된 핀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평소의 자신과 다르게 유창하게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서 돈을 끌어내게 된다. 핀 외에도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된 인물은 매슈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당분간 핀과 함께 지내게 된 매슈는 인기도 많고 매력적인 친구다. 자신의 상처를 과장하지 않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안을 줄 아는 매슈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스러운 개 딜런처럼 핀이 처음부터 마음을 허락한 존재들답게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며 문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제아무리 더 이상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겠어, 라고 결심한들 이미 신이 마련해놓은 만남을 거부할 순 없는 것 아닐까.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관계’들에 가슴이 설렌다. 미리 지레짐작으로 그 관계들에 대해 겁을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