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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뇌 - 읽기의 과학과 진화
스타니슬라스 데하네 지음, 이광오 외 옮김 / 학지사 / 2017년 6월
평점 :
대박이다.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인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만큼 재밌다. 이런 책을 발견하다니 운수대통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책을 빨리 읽을까"라는 질문은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에서 한 챕터로 다뤘던 내용인데, 너무 흥미로운 주제라서 이걸 책 전체의 소재로 하는 책 두 권을 더 읽게 되었다. 제목도 비슷한 <책 읽는 뇌>와 <글 읽는 뇌>가 그것이다. 먼저 읽은 <책 읽는 뇌>가 더 유명한 책이지만 내용은 <글 읽는 뇌>이 훨씬 알찬 것이, 알이 꽉꽉 들어찬 5월의 꽃게같네. 일단 문체가 장식적이지 않고 간결하다. 재미있는 가설과 실험과 뇌 그림이 많이 나와서 지루할 틈이 없다. 전문적인 실험을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해하도록 풀어 쓴 솜씨가 훌륭하고, 일반인이 직접 해 볼 수 있는 간단하고 신기한 인지과학 실험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대칭에 관한 부분이었다. 좌뇌와 우뇌의 대칭과 비대칭에 관한 부분도 재미있었고, 독서와 대칭에 관한 챕터도 재미있었다. 좌뇌와 우뇌는 주로 상반되는 역할을 하는 듯 하지만, 대칭적인 부위가 동일한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e.g. 좌뇌의 후두측두가 손상되면 우뇌의 후두측두가 그 역할을 맡는 경우 등)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상의 많은 동물들이 좌우 대칭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것과 관련해서 또 읽으려고 쌓아둔 책이 많이 있다. ㅎㅎㅎ 내가 왼쪽과 오른쪽이 늘 헷갈리는 것은 우리 몸이 좌우 대칭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뇌가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나 <책 읽는 뇌>와 겹치지 않는 부분 위주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1. Brain's Letterbox:
- 글자를 읽는 과정에는 2가지 경로가 있다. 1) 스펠링을 소리로 바꾸는 경로와 2)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경로가 그것. 둘 중 전자만 손상된 환자의 경우는 책 내용은 이해하는데 소리내어 읽지를 못한다. 반면, 후자만 손상된 경우 소리내어 읽지만 내용은 이해를 못한다.
- 저자가 'letterbox'라고 부르는 좌뇌 후두측두(occipito-temporal)의 영역이 있다. 시각 담당 영역의 일부이지만, 문자가 아닌 기타 물체 인식 (e.g. 얼굴 인식) 영역과는 독립된다. 이 영역에 손상이 오면 시각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글자를 못 읽게 된다. 뇌 분화가 덜 된 유아가 이 영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경우, 우뇌의 대칭되는 영역에서 letterbox의 역할을 담당한다.
- 단어를 읽을 때 사용되는 뇌의 부위가 단어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1) 유사(가짜) 단어(e.g. plosh)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음성 영역(superior temporal)만 활성화되고 의미 영역(middle temporal)은 활성화되지 않는다.
2) 소리나는 대로 스펠링을 틀리게 쓴 단어(e.g. wimen: women의 오타)는 음성 영역이 먼저 활성화되고 의미 영역이 활성화된다.
3) irregular한 단어(e.g. yacht)는 의미를 먼저 이해하고 소리를 떠올리기 때문에 의미 영역이 먼저 활성화되고 음성 영역이 나중에 활성화된다.
2. Neuronal hierarchy:
- 뉴런들은 몇 단계의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하위 레벨의 뉴런들은 작은 영역(획의 일부같은)만 보고, 중간 레벨의 뉴런들은 문자 하나를 보고, 상위 레벨은 문자 몇 개의 조합을 보는 hierarchy가 있다. 윗단계로 갈 수록 하나의 뉴런이 보는 영역이 더 넓어 지는 것. 상위 단계의 뉴런 한 개는 하위 단계의 뉴런 몇 개와 연결이 되어 그 몇 개의 뉴런들의 조합을 인식하는 구조다. (이것은 컴퓨터비전에서 사용하는 이미지 필터 뱅크/피라미드와 비슷하다.)
- 뉴런들은 통계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조합(e.g. 'qu', 'ough', 'ea')에만 강하게 반응한다. 모든 조합을 다 담당하려면 뉴런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통계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조합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뉴런을 아낄 수 있다.
- 저자는 2개의 연속되는 문자를 인식하는 뉴론(bigram neuron)이 있을 것으로 추측.
- synesthesia (공감각 증후군): 검은색으로 인쇄된 문자인데 특정 글자가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경우. 리처드 파인만도 그랬다고! 이런 사람들은 '5'자 사이에 '2'자를 섞어 놓으면 색깔의 차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 비해 아주 쉽게 찾는다.
3. 읽기와 대칭:
- 글자를 배우는 아이들은 글자를 좌우를 바꿔서 쓰는 시기가 있다. 우리의 타고난 시각은 물체인식을 위한 것이지 문자인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물체인식에서는 동일한 물체를 다른 각도에서 봤을 때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에는 'b'와 'd'를 다른 방향에서 본 같은 물체라고 생각하고 헷갈리다가 독서 능력이 발달하면서 두 문자를 구분하게 된다.
- 시각 정보는 뇌에서 교차가 일어난다. (오른쪽 영상은 좌뇌로, 왼쪽 영상은 우뇌로 입력됨) 양쪽 뇌에서 각각 본래의 영상과 거울 영상을 입력받아 두 가지가 경쟁한다는 설이 있다.
- 시각피질은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두 가지 경로가 있는데, 위쪽(ventral) 경로는 위치에 무관한 물체 고유의 특징(what)을 인식하고, 아래쪽(dorsal) 경로는 그 물체와 나와의 거리, 위치, 속도, 방향 등(how)을 인식한다. 후자가 손상된 환자의 경우 좌우가 바뀐 그림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놀랍게도 좌우가 뒤집힌 글자는 구분을 잘 한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물체인식과 문자인식을 다른 방식으로 함을 보여준다. 독서 능력이 발달하면 ventral pathway에서 이미 'b'와'd'를 다른 글자로 인식하는 것이지, 좌우가 바뀐 같은 물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 이집트 상형문자는 좌우가 바뀐 글자가 같은 의미를 갖고, 문장을 좌에서 우로 쓰기도 하면 우에서 좌로 쓰기도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좌우가 바뀐 글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울 영상도 잘 구분하지 못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