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 헌법 묵상, 제1조
이국운 지음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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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위의 두 문장은 바로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이다. 아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위의 문장들을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 1조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그것의 '주어'에 대해 궁금증을 품어본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헌법 1조를 여러 번 접했지만 그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이다' 정도의 표면적 의미만을 생각했지, 그 기저에 깔린 더욱 심도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딱히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었음이 분명하다.

  이국운 교수가 쓴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는 제목에 상당히 충실한 책이다. 184페이지에 이르는 결코 두꺼운 편은 아닌 책이지만, 그 안에서 줄창 헌법 1조의 주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탈출의 자유', '광야의 자유', '똘레랑스의 자유', '중첩적 합의의 자유' 등의 개념들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자유들이 헌법 1조 속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헌법 1조를 통해 개별 대한국민들 사이에 서로 차이가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러한 자유들을 서로 인정하고 공통적인 울림을 찾아서 합의하는 '공화의 논리' 또한 엿볼 수 있다. 헌법 1조의 주어는 '대한국민', 즉 우리들 자신으로서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정태적인 의미가 아닌 역동적인 의미에서 자유로부터 민주와 공화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이 평소에는 전혀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용적이지 못한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헌법이 변화해온 과정과 헌법 정신이 실현되어왔는지의 여부, 앞으로의 헌법 개정 방향 등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헌법 1조에 대한 묵상이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하였다. 
 내용 말고도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 책의 문체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철학적 사유들은 내게 정말 생소한 것이었고, 어떻게 풀어 내느냐에 따라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를 내용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도 설명했듯 끊임없이 '우리'라는 단어를 주어로 활용하여 문장들을 썼고, 급기야 책의 후반부에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한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발화자인 우리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대한국민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라고 말하며 대놓고 독자들과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문체로부터 '헌법이란 타자에게 말 걸기이다'라는 저자의 주장 또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철학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겨울, 그렇게나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게끔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근원을 헌법 1조로부터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던 한편 나에게 일종의 설렘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마치 만능키처럼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헌법 1조를 발화하는 자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포함하여 헌법을 묵상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미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제공해줄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이 책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로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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