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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두껍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담감이 엄습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꽤나 학문적이어서, 사실 개인적 선호만을 따라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과연 언제 읽었을 지도 의문인 책이다. 하지만 586페이지라는 본문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던 것은 책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저자의 신선한 생각들이 나의 내면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전혀 의심을 품고 있지 않던 부분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말 흥미로웠고 내게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와서, 왜 이 책이 베스트 셀러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으로 나누어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종교나 화폐, 기업 등은 우리가 삶에서 끊임없이 접하며 살고 있는 것들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종교 기관들을 지나치고, 돈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거래를 하고, 언제나 수많은 브랜드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들의 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의심을 품어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실재한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의 인간은 인권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그것들을 위한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지만 그것들 역시도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라는 점은 놀라운 통찰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역시도 말이다.
또 인상깊었던 것은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로 여기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농업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를테면 사원을 건설하고 운영하는)을 달성하기 위해 인류가 자신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 혁명을 통해 인간이 할 일은 더 많아졌고,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종의 번식을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 수 있지만, 인류 개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감은 더 낮아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농업 혁명이 인류를 제외한 다른 종에게는 재앙이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단순히 농업 혁명을 인류가 번성하게 된 원인의 한 축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러한 저자의 부정적인 시각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농업 혁명 부분을 통해서도 저자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지만,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유발 하라리는 '행복'에 대해 고찰하는데 그 부분 역시도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건강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돈을 많이 벌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것이라 여기는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역사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분명 발전의 역사를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인간들이 선조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외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한편으로는 주관적 느낌조차도 행복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하는 등 유발 하라리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소개한다. 읽기 전에는 책을 통해 그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이라 막연히만 생각하였는데, 역사를 살펴보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내게 아주 신선한 생각의 흐름을 제공해 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당연시하고 있던 생각들도 분명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각각의 쟁점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적용하여 우리 인류의 존재, 즉 호모 사피엔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다룰 때 주로 보던 그림이 있는데,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점점 진화하면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임을 알려 주는 그림이 그것이다. 하지만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6개의 인간 종 중 홀로 살아남은 것이 호모 사피엔스인 것뿐이라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에 펼쳐진 이야기들도 내가 그 동안 은연중에 인류를 다른 동물 종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도록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피엔스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살피면서 역사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나, 역사의 대부분은 우리가 허구로 만들어낸 것들로부터 생겨났다는 것,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던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역사라는 점 등. 이처럼 유발 하라리의 놀라운 통찰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 보았던 것은 내가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물리적으로 받았던, 정말 신선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