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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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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로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 셀러 자리를 휩쓸었던 유발 하라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전작에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달리, 인류의 미래에 중점을 둔 544페이지 남짓의 <호모 데우스>와 함께다. 굳이 이 책을 읽어 보지 않더라도, 인류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감히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양상으로 인류가 진화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떠오르고 있는 'AI', '사물 인터넷', '로봇' 등의 키워드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시작 단계에 있는 지금 우리가 그것들을 적절히 개발 또는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이미 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특유의 문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러한 흐름을 잘 따라가게끔 한다. 저자는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논증하는데 그러한 근거들이 다소 설득력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며 책 속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 여타의 책들보다 부담스러운 분량임에도 내가 이 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다. 
 <호모 데우스>에는 전작인 <사피엔스> 역시도 그러했듯 유발 하라리의 놀라운 통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아', '전쟁', '질병'이라는 난제들을 잘 관리한 인류가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되면서,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특별해질 수 있었던 이유, 상상적 허구로서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는 <사피엔스>의 주를 이루었던 내용이 어느 정도 반복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후의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로웠다. 당연한 가치를 갖는다고 믿고 살아왔던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조차도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며, 인류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몸 속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따라 일어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그러한 일련의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데이터교'를 창시할 것이라 보았다. 평소 나도 얕게나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 터라 이 부분이 더욱 와닿기도 했고, '세상이 크게 변화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이 주를 이루는 예술 분야 쪽은 인공지능이 지배하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감정마저 기계적으로 설명하고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세상에서 데이터 앞에 불가능이란 없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호모 데우스>를 다 읽고 나니, 나에게 일말의 불안감이 찾아왔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뉴스들을 종종 접하면서도 그것들을 따로 떼어서 공부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마치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책 속의 이야기들이 아주 먼 미래가 아닌 불과 몇십 년 후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이 이토록 상용화되는 것도 10년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미래였을 텐데, 그처럼 앞으로의 변화도 훨씬 더 빠르면 빨랐지 결코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걱정 또한 밀려오게 되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과연 부질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일말의 경각심이라도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가 마지막에 제기한 세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앞으로 더욱 깊게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호모 데우스>는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한 다른 책들 또한 더 많이 읽어보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었던 것 같다. 덧붙여 인류의 무한한 행복 추구가 과연 우리 스스로를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더욱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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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 헌법 묵상, 제1조
이국운 지음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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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위의 두 문장은 바로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이다. 아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위의 문장들을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 1조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그것의 '주어'에 대해 궁금증을 품어본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헌법 1조를 여러 번 접했지만 그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이다' 정도의 표면적 의미만을 생각했지, 그 기저에 깔린 더욱 심도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딱히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었음이 분명하다.

  이국운 교수가 쓴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는 제목에 상당히 충실한 책이다. 184페이지에 이르는 결코 두꺼운 편은 아닌 책이지만, 그 안에서 줄창 헌법 1조의 주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탈출의 자유', '광야의 자유', '똘레랑스의 자유', '중첩적 합의의 자유' 등의 개념들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자유들이 헌법 1조 속에 녹아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헌법 1조를 통해 개별 대한국민들 사이에 서로 차이가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러한 자유들을 서로 인정하고 공통적인 울림을 찾아서 합의하는 '공화의 논리' 또한 엿볼 수 있다. 헌법 1조의 주어는 '대한국민', 즉 우리들 자신으로서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정태적인 의미가 아닌 역동적인 의미에서 자유로부터 민주와 공화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이 평소에는 전혀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용적이지 못한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헌법이 변화해온 과정과 헌법 정신이 실현되어왔는지의 여부, 앞으로의 헌법 개정 방향 등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헌법 1조에 대한 묵상이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하였다. 
 내용 말고도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 책의 문체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철학적 사유들은 내게 정말 생소한 것이었고, 어떻게 풀어 내느냐에 따라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를 내용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도 설명했듯 끊임없이 '우리'라는 단어를 주어로 활용하여 문장들을 썼고, 급기야 책의 후반부에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한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발화자인 우리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대한국민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라고 말하며 대놓고 독자들과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문체로부터 '헌법이란 타자에게 말 걸기이다'라는 저자의 주장 또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철학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겨울, 그렇게나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게끔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근원을 헌법 1조로부터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던 한편 나에게 일종의 설렘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앞으로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마치 만능키처럼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헌법 1조를 발화하는 자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포함하여 헌법을 묵상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미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제공해줄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이 책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로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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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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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미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그 중 단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함께 어울리는 모습일 것이다. 그 정도로 미국은 다양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이며, '다인종', '다문화', '다민족' 등의 키워드를 연상시키는 나라이다. 자유롭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세계화를 주도하는 나라. 그렇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내세운 반이민정책, 보호무역주의 등은 그 동안 국제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미국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그러한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외형과 실체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미국인인 새뮤얼 헌팅턴의 시각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1장에서는 정체성의 의미에 대해 보편적으로 다루고, 2장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에 기반하여 미국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파헤치며, 3장에서는 그러한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언급하며 미국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음을 고발한다. 마지막 장인 4장에서는 미국이 그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 새뮤얼 헌팅턴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편파적이라거나 눈살이 찌푸려질만큼 예찬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저자는 수많은 통계 자료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미국의 정체성'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45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밀하고 정교한 이야기들이 논의될 것을 기대하게끔 만드는데, 저자는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은 세밀하고 분석적이며 논리적이다. 또한, 그렇게 미국이 어떤 국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기 때문에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미국인들의 심리적인 부분들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에 의해 처음 쓰여진 지 아주 오래된 책이며 2004년에 발행된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을 재출간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내용들이 많았던 것은 분명히 좋은 평가를 내릴 만한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국가로 비춰지던 미국이 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게 되었는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미국인들의 내재된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점들 때문에, 이 책이 결코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자 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파워, 미국과 연관된 국제적 이슈들이나 미국을 중심에 두고 얽힌 각국의 관계, 그것들의 변천사 등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주 예전부터 우리 나라는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도 그렇고, 트럼프가 당선되고 우리 나라 역시도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더욱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오로지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하며, 그 내용이 다소 심오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문장들도 번역체 느낌으로 어딘지 모르게 현학적이고 추가 설명 없이 던져져 있는 개념들도 많아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불친절하다. 수없이 많은 근거 자료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그저 저자가 알고 있는 방대한 학문적 지식들을 나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중력이 흐려져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부분들도 꽤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연관된 실질적 이슈들이나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 등의 부분들을 다양하게, 전반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과 그 변화의 섬세한 부분까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 학술적이고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전부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현 상황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을 '정체성'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새롭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깔려 있는 정체성을 파헤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미래에 대해서도 예측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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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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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두껍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담감이 엄습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꽤나 학문적이어서, 사실 개인적 선호만을 따라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과연 언제 읽었을 지도 의문인 책이다. 하지만 586페이지라는 본문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던 것은 책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저자의 신선한 생각들이 나의 내면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전혀 의심을 품고 있지 않던 부분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말 흥미로웠고 내게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와서, 왜 이 책이 베스트 셀러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으로 나누어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종교나 화폐, 기업 등은 우리가 삶에서 끊임없이 접하며 살고 있는 것들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종교 기관들을 지나치고, 돈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거래를 하고, 언제나 수많은 브랜드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들의 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의심을 품어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존재하는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실재한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의 인간은 인권과 정의를 외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그것들을 위한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지만 그것들 역시도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라는 점은 놀라운 통찰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역시도 말이다.
 또 인상깊었던 것은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로 여기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농업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를테면 사원을 건설하고 운영하는)을 달성하기 위해 인류가 자신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 혁명을 통해 인간이 할 일은 더 많아졌고,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종의 번식을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 수 있지만, 인류 개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감은 더 낮아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농업 혁명이 인류를 제외한 다른 종에게는 재앙이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단순히 농업 혁명을 인류가 번성하게 된 원인의 한 축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러한 저자의 부정적인 시각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농업 혁명 부분을 통해서도 저자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지만,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유발 하라리는 '행복'에 대해 고찰하는데 그 부분 역시도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건강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돈을 많이 벌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것이라 여기는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역사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분명 발전의 역사를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인간들이 선조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복이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외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한편으로는 주관적 느낌조차도 행복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하는 등 유발 하라리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소개한다. 읽기 전에는 책을 통해 그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이라 막연히만 생각하였는데, 역사를 살펴보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내게 아주 신선한 생각의 흐름을 제공해 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당연시하고 있던 생각들도 분명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각각의 쟁점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적용하여 우리 인류의 존재, 즉 호모 사피엔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다룰 때 주로 보던 그림이 있는데,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점점 진화하면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임을 알려 주는 그림이 그것이다. 하지만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6개의 인간 종 중 홀로 살아남은 것이 호모 사피엔스인 것뿐이라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에 펼쳐진 이야기들도 내가 그 동안 은연중에 인류를 다른 동물 종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도록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피엔스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살피면서 역사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나, 역사의 대부분은 우리가 허구로 만들어낸 것들로부터 생겨났다는 것,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던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역사라는 점 등. 이처럼 유발 하라리의 놀라운 통찰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 보았던 것은 내가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물리적으로 받았던, 정말 신선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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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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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강준식


 나는 고등학생 때 사회탐구과목 중 한국사를 택해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 공부를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혹자는 내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한국 현대사에 대해 물으면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던 적이 대다수였다. 실제로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분명 언젠가 간략하게나마 공부했던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자괴감이 들었는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지금이나마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는 11명의 대통령과 1명의 총리를 포함해 총 12명의 최고 권력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옆면을 슬쩍 살펴보면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부 비슷한 분량에 걸쳐 서술되어 있는데,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접한 학습서들 중에는 장면 총리나 윤보선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들을 깊게 다루지 않았던 책이 대다수였고(물론 그만큼 그들이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후대에 유의미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겠지만) 특히 최규하에 대해서는 '서울의 봄'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 정도만 남아있었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통해 잘 모르던 부분들이나 잊어버렸던 부분들, 뒷이야기들도 구체적으로 짚어볼 수 있어서 새롭고 좋았다.
 이 책 한 권이 그간의 공부보다 더 머릿속에 남는다고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책의 내용이 사건이나 중요한 키워드 중심이 아닌 오로지 '인물'에 초점을 맞춰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험만을 위해, 자격증만을 위해 공부했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몇 차 개헌, 이러이러한 통일 정책, 특정 집단이 일으켰던 운동 등 다양한 키워드들과 그 내용이 제대로 짝지어지지도, 한 데 모이지도 못한 채 머릿 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나 스스로 지식들을 스토리로 엮지 못하고 당시에 그저 외우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각 대통령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그들의 성격은 어땠고, 평판은 어땠으며, 배우자와는 어땠는지, 즉 보편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실제로 그들이 후대에 남긴 결과에는 그들의 개인적인 성향에 의한 순간적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경우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런 부분들이 각 대통령의 공과 과를 다룰 때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맥락을 어느 정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저 '옛날에 그런 대통령이 있었다더라'식이 아닌 정말 내 주변에 존재할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더욱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그 동안의 엉켜있던 지식들이 다시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읽으면서 또 강하게 느낀 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정말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순간의 감정이나 성격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의사결정을 해서도 안 되고, 악의없는 판단이 부정적 바람을 몰고올 수도 있으며, 많은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전부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등 막중한 책임과 부담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많이 한 소위 엘리트 출신 대통령이 반드시 위대한 업적을 쌓는 것도 아니고, 인성이 좋다고 알려진 성자 대통령에게도 공과 과가 있듯이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반드시 A라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참 입체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요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대사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오는 5월 9일, 우리는 대통령 선거라는 거사를 앞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정말 시기적절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을 앞둔 현재 상황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택에 앞서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해가 잘 되는 책을 통해 쭉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추천한다. 12명의 최고 권력자들의 인생과 업적들을 살펴보는 동안, 나름대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한 기준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대통령으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선택해왔는가? 이제,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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