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곳을 버리고 지키지 않았으며 명령이 번잡하고 소란스러웠으니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신립이 패할 것을 알았다. p.198
당시 가장 명성이 있던 두 장군이 차례로 대패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적을 미리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방어의 요충지를 죽기로 지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신립은 적의 대군이 가까이 진군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정보를 알려준 군관의 목을 베기까지 하는 황당한 실책을 범했다. 그리고 해상에 있던 경상좌수사 박홍은 단 한 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고 경상 우수사 원균은 가장 많은 배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적을 보고 달아나서 전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적은 북을 치며 수백리를 거침없이 북상하여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상주에 이르렀다. 지세가 험하고 지키기 수월한 곳마다 번번히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적들은 무풍지대처럼 수월히 진군하였다. 얼마나 조선의 장수들과 임금을 깔보고 비웃었을지 눈에 훤하다. 곧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원병을 청하게 되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병기.총포.기계를 강에 가라앉히고 옷을 바궈 입어 달아났다. 이런 글들을 읽고 있자니 그동안 우리나라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특히 세월호 참사가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평상시에 대비하지 못해서 큰 참사를 부른 일이 어디 한 두번이겠는가. 그 일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재"라는 두 글자일 것이다. 적재 적소에 훈련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 소명을 다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거나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그렇게 큰 피해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장은 옷을 바꿔 입고 배를 버리고 높은 직위에 있는 공무원들과 책임자들은 모두 우왕자왕하는 틈에 애꿎은 어린 학생들만 무수히 죽어갔다. 전쟁이 터진다 한들 그들의 하는 꼴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밑에 있는 병사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싸워도 제대로 된 지휘와 작전이 없다면 적은 무풍지대를 건너듯 휴전선을 돌파할 것이고 과거의 한양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버려졌던 것 처럼 현재의 수도 서울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돈있고 힘있는 자들부터 먼저 서울을 빠져나간 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들이 건너고 있는 한강 다리를 서둘러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릴것이다. 마치 6.25전쟁초기에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임금은 평양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고 결국 평양성은 적에게 함락되고 만다. 한편 경상우수사 원균이 적의 기세에 놀라서 100여척의 배와 화포. 병기를 모두 바다에 가라앉힌 다음 4척의 배만 이끌고 도망쳤다가 이영남의 충고로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순신이 처음에는 각자 맞은 지역이 있는데 임금의 명이 없이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없다고 하다가 40여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거제도 앞바다로 도우러 나왔고 지형을 잘 이용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후로도 이순신의 싸움에는 적보다 훨씬 불리한 싸움에서 지형을 이용한 계략으로 적을 물리치는 놀라운 승리를 많이 이끌어 냈다. 이러한 계략은 단순히 머리가 좋거나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밤을 새워가며 지형을 연구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에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지를 끊임없이 연구한 성과였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이순신과 같은 인재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무능한 상사 밑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 뛰어난 인재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마다 그들을 시기하고 서열과 나이를 앞세워서 좁은 테두리안에 가둬두려는 권문세족들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을 것이다. 역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중 하나는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날카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