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국어사전 -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들이 함께 보는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의 요리 재료는 보리 국어사전입니다.

자!! 무게도 달아보고, 칼질도 해보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서 엄마가 집에서 안하는 요리를 여기서 다 한다고 뭐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나름 제법 심각한 문제라서 생태와 별로 관련이 없는 듯한 국어사전을 씹어볼 생각을 다 했습니다.


얼마전 제가 오랫동안 애용하던 사전을 사무실에서 쓸 필요가 있어서 사무실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용 국어사전 외에는 마땅한 국어사전이 집에 없는지라 하나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게 마침 출간된지 얼마 안 된,

그리고 아주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보리 국어사전이었지요.

출간된지 얼마 안 된 사전인데 벌써 몇 쇄가 팔려나갔더군요.

에구 부러워라


배달 온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제법 묵직한 게 예쁘게 만들었네요.

(헐... 제작비 엄청 들여 올컬러로 만들었네.)

국어사전을 올컬러로 만든 게 또 있으랴 싶기도 하고, 제법 많은 그림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 많은 공이 들어가 있겠다 싶습니다.

올림말(표제어)이 4만여 단어나 들어가 있다고 광고를 하더니...

으레히 사전류의 책이 그렇듯 급한대로 목침을 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왜 이 책을 샀어?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게 잘 나왔다고 그러던데?

그럽니다.


사전이 잘 나오고 못나올 게 무에 있으랴 싶지만 사전이기 때문에 더 꼼꼼히 따지고

살펴 고르는 게 맞지 싶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맺어놓은 약속의 총집합이 바로 도감과 사전이기 때문이지요.


그림이 하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한 장씩 넘기며 그림 감상하는 재미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곤충과 식물이 세밀화로 묘사되어 있어서 - 비록 너무 작게 들어가 있어서 실물 도감에야 비할 수 없겠지만-

아쉬운대로 기존의 국어사전에는 없는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몇 장을 넘기니 잠자리 그림이 한 마리 그려져 있네요.

잠자리 생태 도감씩이나 만든 깜냥이니 관심이 더 갈밖에요.

그런데 잠자리 이름이 '갈구리측범잠자리'네요.

어랍쇼? 우리나라 잠자리 중에 '갈구리측범잠자리'가 있었던가?


군대에서 흔히 쓰던 '갈구다'라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무슨 이름이 이런 게 있을까 싶어 잠자리 도감을 들추어 보니

제가 만든 잠자리 도감에는 갈구리측범잠자리는 없네요.


얼른 제가 전에 출간하는 데 참여했던 국어비속어사전을 보니 거기에는 '갈구다'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남을 괴롭혀 화나게 하는 것을 갈군다고 하지요.

그 사전을 만들 당시만 해도 이 말은 국어사전에는 올라가 있지 않은 말이었지요.

지금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다.' 라는 풀이로 올라가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잠자리가 무에 사람 괴롭힐 일 있다고 갈구리측범잠자리라고 했을까요?
측범잠자리라는 말은 잠자리의 가슴 옆 부분 무늬가 범의 무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문제는 '갈구리'이지요.


제가 만든 한국의 잠자리 생태도감에 부록으로 잠자리 이름 혼용표가 들어 있습니다.

이승모 선생께서 잘못 쓴 잠자리 이름 중에 갈구리측범잠자리가 있네요.

이 잠자리의 옳은 이름은 노란측범잠자리입니다.

이승모 선생 이전의 연구자들이 모두 노란측범잠자리라고 부르던 잠자리이지요.


노란측범잠자리의 모습을 보면 꼬리 부분-교미부속기라고 합니다-이 갈고리처럼 둥글게 휘어져 있습니다.

갈구리가 아니고 갈고리를 닮았지요.


곤충의 이름은 처음 학계에 보고한 사람이 짓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일이지요.

학계에 보고하거나 도감을 만드는데 이름이 없이 그 잠자리, 또는 이 잠자리 이렇게 칭하면서 보고서를 쓸 수 없으니

보고자가 아예 이름을 짓도록 하자는 취지이지요.

그리고 처음 명명한 사람이 지은 이름을 그대로 따르자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놓고 그동안 지켜온 약속이었지요.

물론 이름을 중간에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명백한 오류이거나, 이를테면 측범잠자리가 아니고 좀잠자리인데 측범잠자리라는 이름을 쓴 경우와 같이 속명이 달라졌을 경우 등

분류체계가 바뀌면 이름을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어쩌다 기주식물을 이름에 사용했는데 그 기주식물이 틀렸을 경우에도 여러 연구자들이 동의한다면 바꾸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승모 선생께서는 노란측범잠자리를 갈구리측범잠자리라고 이름을 바꾸어 놓고, 바꾸게 된 이렇다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지요.

물론 어떤 연구자는 이승모 선생께서 새로 붙인 이름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원래 고추좀잠자리를 고추잠자리로, 고추잠자리는 빨간잠자리로 바꾸어 놓기도 하셨지요.

그러고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으셨답니다.


이승모 선생이 새로 붙인 잠자리의 이름이 옳다고 생각하는 연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의 언어 감각이나 잠자리의 생김새가 이승모 선생이 붙인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언어감각에 맞고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일 경우에 이름을 바꾸어도 되는 걸까요?


우리의 언어감각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거니와 시대에 따라 아주 쉽게 변하는 것이어서 믿을 것이 못되지요.

가을철 감나무 가지와도 같습니다.

믿었다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쉽상이거든요.


바로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잘 모르는 여인네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했다가는 따귀를 얻어맞고

고소당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그간 우리의 언어감각이 변해서 그런 말을 하면 기분 좋아 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 것 같더군요,

이렇게 언어감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답니다.

더구나 개똥잠자리, 쇠똥잠자리 하고 부르는 게 더 잘어울린다고 하는 연구자가 나타나면 어찌될까요?

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갑자기 '책상은 책상이다'가 떠오르네요.

비약하자면, 이승모 선생은 후세들이 자신의 이름을 '이개똥'이라 바꾸어 불러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의 실수를 한 것이지요.

얼마간 이승모 선생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선생의 업적에 커다란 오점을 남길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도감이 나올 때마다 곤충에 다른 이름이 붙여진다면 우리 사회의 약속은 모두 깨져버리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름을 바꾸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도감을 낼 때 가장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

기존 연구자들이 내 놓은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하고 보고된 적이 있는 종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랍니다.

종이 많은 나방류 도감의 경우에는 그런 작업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해야만 한답니다.

잠자리처럼 종이 얼마 되지 않는 경우에도 수백 수천 번은 반복해야 하는 피가 마르는 작업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름을 떠억 하니 그것도 국어사전에 올려 놓았네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어서...

더구나 이승모 선생이 낸 책은 일부 연구자들이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소량만 발행된 책이라서,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집히는 게 있어서 영현이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책놀이터에 보리에서 나온 도감이 있냐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있다고 하네요.

기특한 녀석...

보리에서 나온 도감이야 동정이 가능한 도감이 아니니 제가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얼른 책놀이터에 달려가 보리에서 나온 세밀화 도감을 보니 국어사전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 전에 출간한 책에도 들어 있네요.

그림을 재활용했군요.

세밀화 도감에도 갈구리측범잠자리라고 이름을 넣어놨네요.

어차피 보리 세밀화도감이야 동정용 도감도 아니고 그림책이니 상관 없는.... 일이 아니군요.

애들이 엉뚱한 이름으로 알게 생겼군요.


헐... 자기네가 도감에서 틀려 놓고 그걸 국어사전에서 재생산했군요.


애들이 이 도감을 보고 갈구리측범잠자리라고 잘못 알고 있을 생각을 하니 화가 치미네요.

뭔 출판사가 이런 검토도 안 한 책에 도감이라는 이름을 붙이나 싶기도 하고,

잘못된 이름을 아무 생각없이 다시 국어사전에 올렸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네요.


사실 사전을 팔 때 4만 단어나 표제어로 올렸다고 자랑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기는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되도록 표제어가 풍부하게 올라간 사전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편집진에서 단어를 많이 올리려고 욕심을 부린 것일까요?


설마... 도감을 만든 출판사에서 이런 이름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도감을 만들었을 리도 없고,

알면서도 잘못된 이름을 표제어에 올렸을 리는 더욱 없고...

참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더구나 식물이나 곤충 중에 이런 혼란스런 이름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사전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아직 사전을 펴낼 역량이 안 되는 출판사에서 너무 무리하면서 국어사전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보리 국어사전 실망입니다.


그나저나 영서 엄마에게

그 사전 갖다 버려라

그랬더니, 갑자기 뱁새눈이 되네요.

이를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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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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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 권혁도 세밀화 그림책 시리즈 1
권혁도 글 그림 / 길벗어린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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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잠자리가 애벌레 상태로 월동하는 모습을 떠억하니 그려놨네요.  

저자가 실제로 야생에서 관찰을 하는 분이 아닌 것 같군요. 

그럼 다른 사람이 찍어놓은 사진이나 죽은 표본을 보고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 같은데... 

좀 많이 황당한 책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된장잠자리가 월동하지 못한답니다. 

되도록 다음부터는 직접 관찰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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