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다 - 시시詩視한 삶을 위한 명저 산책
고석근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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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뻔뻔하게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작가의 이 말이 얼마나 나에게 위안이 되는지 몰랐다. 자기 자신으로 살다 보니 미친년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작가 제자분의 말처럼 남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도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싶다. 뻔뻔하게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고 있으니까. H와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예수가 아니라서 부활할 수 없으니까.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나의 세계를 기필코 갖어야 한다고. 꼭 그래야 한다고.

이번 생은 틀렸다고?

다음 생은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지금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누군가를 보살피고, 남들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들을 먼저 끝내고. 과연 그런 일들이 끝이 있을까?

언제 나에게로 돌아오고, 나를 살피고, 내 영혼을 만난다는 말인가.

나의 세계는 도대체 만들 수나 있는 것일까?

 

고석근 작가의 책은 항상 나에게 힘을 준다.

그는 내 마음을 알고, 나를 격려해준다.

가끔은 지친 내가 기운 낼 수 있게 해준다.

그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있다.

 

그때가 아니면 안되었던, 내 영혼을 만났던 순간을 그에게 바친다.

 

3월은 봄의 시작이다. 아직은 바람에 쌀쌀함이 묻어 있지만 입춘은 벌써 지났고 곧 개구리도 깨어나는 경칩이다. 추위를 못 견디는 나는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겨울이 빨리 지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따뜻해지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아무리 걸어도 신발에 흙 한 줌 묻지 않는 도시에 살지만, 어딘가 밭둑에서 피어날 냉이들을 나는 생각한다. 차가운 땅속에서 묵묵히 혼자 견뎌 낸 그 향기로운 냄새를 상상한다.

 

봄의 첫날 H와 나는 속초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는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고 운전을 안하니 마음도 편안했다. 연휴 첫날이라 차가 많이 밀렸고 간식을 먹거나 속닥거리다 살짝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들판은 아직 봄의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들도 아직 변화가 없어 보였다. 홍천, 인제, 원통 쪽으로 가자 하얀 자작나무들이 훤하게 들여다보여 아름다웠지만,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도시 사람의 눈으로 알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 생명들 안에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겠지 라고 상상하며 태백산맥을 넘었다.

 

하지만 그곳엔 떠나기 아쉬워하는 겨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맥을 넘자마자 목화솜 같은 흰 눈이 나무들 사이사이에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오히려 도시는 자동차와 빌딩들의 열기가 겨울을 억지로 억지로 밀어내고 있었지만, 이곳의 산들은 아직도 하얀 겨울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었다. 나의 기대와는 달랐지만, 어찌나 고마운지. 즐기지 못하고 빨리 보내려고만 했던 겨울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H와 나의 단골 카페는 여전히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설악산은 아직 눈을 품고 있지만, 카페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어쩔 수가 없었다. 햇빛에선 나른한 봄날의 포근함이 함께 했고, 음악은 말할 수 없이 감미로웠다.

 

겨울과 봄의 공존. 그 놀라운 자연 속에 내가 있다. 나 자신 또한 자연임을 그제야 불현듯 깨달으면서.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비로소 나를 내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속의 영혼과 멀어져 결국 잃어버리고 마는 이란 남자처럼. 영혼보다 먼저 바쁘게 달려가던 나를 불러세우고 나의 영혼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멈추어서서 나의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 여행이 나에게 주는 놀라움이다.

 

나는 항상 나 자신과 함께 있는가?

나 자신을 마주 보고 깊이 들여다보는가? 아니면 나는 보지 않고 바깥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사람은 삶을 절절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과 만날 줄 아는 사람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나는 차마 아쉬운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겨울 속에서 뒤따라오던 내 영혼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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