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31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여러분은 텔레비전을 공짜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오산입니다. 텔레비전은 광고업자들에게 시청자를 팔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텔레비전 앞에서 "시청"이라는 걸 하면서 노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무임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구요."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그 물건이 필요해서 샀다고 생각하지만 그 배후에는 텔레비전이 생활양식까지 팔고 있었음을 알고 있나요?"

 "광고를 보고 있는 당신은, 마치 장터를 거닐고 있는 사람과도 같답니다."

이 책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을 읽고나니,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아졌다. 

우리는 텔레비전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집에나 거실의 가장 중심 위치에 텔레비전이 놓여있을만큼, 텔레비전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거실을 벗어나면 텔레비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다. 기차역 대기실이나, 심지어 고속버스 안에도 텔레비전을 틀어주니 하루라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텔레비전은 단순한 가전제품의 가치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정하고, 통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 하나! 

우리는 텔레비전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TV를 켜고 (On), 볼륨을 높이고 (Volume), 채널을 틀고 (Channel), TV를 끄는 (Off) 기본적인 TV 조작을 다 할 줄 아는 것만으로, 텔레비전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진 않은지...저자는 보란듯. 이 네가지 (on, volume, channel, off) 를 가지고, 텔레비전과 관련된 모든 메카니즘을 풀어낸다. 신문이나 영화를 누르고, 텔레비전이 탄생하게 된 배경, 텔레비전이 최고의 미디어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 (on)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관점에서 바라본 텔레비전 (volume) 텔레비전을, 외부 세계가 개인의 사적공간으로 들어오는 일방통행로라고 분석한 것 (channel) DMB나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텔레비전의 위기에 대한 경고! (off)  

저자는 이 책에 "세상으로 난 전자 창문에 대한 텔레비전 키드의 성찰"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세상으로 난 전자 창문!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어디든 들여다볼 수 있는 TV를 말한다. 텔레비전 키드! TV가 세상에 나온 이후 태어난 세대로 TV가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부모님이 되었던 세대다. 우리 모두 텔레비전 키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제목은 저자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 텔레비전에 대해 성찰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이 책이 독자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학자임을 내세우기 보다, 평범한 텔레비전 시청자임을 자처하며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자신도 텔레비전을 쉽게 끌 수 없다고, 텔레비전 보NT-SIZE: 11pt">우리집 거실에도 중앙에 텔레비전이 놓여있다고 말하니 학자가 아닌 시청자, 엄밀히 말하면 "일반인보다 조금 깨어 있는 시청자" 인 그의 말에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제목이 주는 느낌은 참 푸근하다. 하지만 이 책은 텔레비전에 아무 생각 없이 빠지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가구나 소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유명인들이 입고 나오는 옷과 머리 스타일대로 따라하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라 착각하고, 방송에서 기아체험 특별 생방송을 하면, 지구상에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많음에 가슴아파하면서 방송에서 잠잠하면, 이 세상의 기아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아는 게 지금의 우리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엘리트라 자부하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매도하며, 텔레비전의 영향을 폄하한다.
이 책은 바보상자인 텔레비전을 버리자고 선동하기 보다는 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버리지 못하는가’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러면서 텔레비전과 시청자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무엇인지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결국 시청자가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쌍방향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분별하게 흘러들어오는 뉴스와 정보, 광고와 다채로운 프로그램 속에 익사하고 말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텔레비전 다음 세대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과 DMB 같은 뉴미디어들이 텔레비전의 단점을 보완해 등장한 만큼 텔레비전 또한 바뀌지 않으면 안되고, 거기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시청자가 될 것을 더불어 당부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텔레비전 시대는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가...였다. 영화가 텔레비전에 의해 살해당했던 것처럼, 텔레비전이 다른 미디어에 의해 살해당할 것인가! 텔레비전이 스스로 꺼지는 종말에 대해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텔레비전을 끄는 것이 텔레비전의 종말일까? 텔레비전을 버린다 해도, 우리가 텔레비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버리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텔레비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텔레비전 시대에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텔레비전이 쏟아내는 유혹과 통제의 흐름에 빠져 익사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는 텔레비전을 끄는 것이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난 텔레비전을 끌만큼의 용기는 없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보고 있는 텔레비전은 분명 어제와 다른 텔레비전임이 분명하다. 

텔레비전 시대! 텔레비전을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텔레비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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