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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는 것 같다 ㅣ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구태여 가로등을 붙들고 고백하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바빌론이 베를린으로 옮겨 가듯, 고대의 달빛이 현대의 할로겐 아래 부려지득, 자신이 놓쳐버린 사랑을 자식이 또 놓치고, 자신이 앓았던 순간을 자식이 또 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밥이라도 처먹고 누워 있으라고 다그치는 것으로 자신의 시간과 자식의 시간을 함께 달래며, 모든 아버지는 순간순간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43p)
아버지들 - 정호승
아버지는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 셋방이다
너희들은 햇볕이 잘 드는 전세집을 얻어 떠나라
아버지는 아침 출근길 보도 위에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다
너희들은 새 구두를 사 신고 언제든지 길을 떠나라
아버지는 페인트칠할 때 쓰던 낡고 때묻은 목장갑이다
몇 번 빨다가 잃어버리면 아예 찾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는 포장마차 우동 그릇 옆에 놓인 빈 소주병이다
너희들은 빈 소주병처럼 술집을 나와 쓰러지는 일은 없도록 하라
아버지는 다시 겨울이 와서 꺼내 입은 외투 속에
언제 넣어두었는지 모르는 동전 몇 닢이다
너희들은 그 동전마저도 가져가 컵라면이라도 사먹어라
아버지는 벽에 걸려 있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고장난 벽시계다
너희들은 인생의 시계를 더이상 고장내지 말아라
아버지는 동시상영하는 삼류극장의 낡은 의자다
젊은 애인들이 나누어 씹다가 그 의자에 붙여놓은 추잉껌이다
너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깨끗한 의자가 되어주어라
아버지는 도시 인근 야산의 고사목이다
봄이 오지 않으면 나를 베어 화톳불을 지펴서 몸을 녹여라
아버지는 길바닥에 버려진
붉은 단바이 터져나온 붕어빵의 눈물이다
너희들은 눈물의 고마움에 대하여 고마워할 줄 알아라
아버지는 지하철에 떠도는 먼지다
이 열차의 종착역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짐을 챙겨 너희들의 집으로 가라
아버지는 이제 약속을 할 수 없는 약속이다(82-83p)
어쩌면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내가 여전히 아버지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지긋지긋하고 미우며 원망스럽다. 그렇게 그립다.(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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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관한, 혹은 아버지를 연상할 수 있는 시를 엮고, 안희연 작가가 아버지를 생각하여 쓴 글 들의 합이다. 안희연 작가의 아버지는 작가가 9세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슬픔을 모를 나이인 때,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갔다고 말해야 할 때, 아이는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후 아버지의 부재가 죽음으로 인함을 알았을 때 그때 받아들여야 할 슬픔의 무게는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리워하고, 함께 했던 짧은 생에서의 추억을 찾고 찾아 곱씹고 곱씹어 아버지를 생각해낸다. 꿈에서 아버지가 안나오면 아버지 생각을 덜 해서 그런걸까, 하며 죄책감도 가져본다. 부모가 죽는다는 건, 아마 누구도 상상하기 싫을 것이다. 어릴 땐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인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 아버지가 매번 기숙사까지 짐을 옮겨주고 매번 학교까지 태워주고 매번 언제든 데리러 오라고 할 때마다 데리러 오고 먹고 싶은 것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시켜주던, 그런 모습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화를 내던 것, 엄마 고생시킨 것만 생각해서 많이 원망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여자의, 엄마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와 많이 부딪혔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임신 7개월때 남동생의 전화. "누나, 엄마가 말하지 말랬는데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될 거 같애서 말한다. 놀래지 말고 들어래이, 아빠 뇌출혈로 쓰러져서 지금 수술방 들어갔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며 손이 벌벌 떨렸다. 당장 아빠를 보러 달려갔다. 4시간 예정되어있던 수술은 6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도하며 기다렸다. '제발 아빠를 살려주세요. 아직 효도도 못했는데, 아빠랑 이야기도 많이 못했는데, 아빠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대답없는 기도만 했다. 혼수로 병원에 온 아빠는 수술 후에도 혼수상태였다. 기적으로 지금은 다시 회사생활까지 하신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 잘해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꼰대 같은 소리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건강하던, 정말 염라대왕이 와도 끄떡없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의학의 최대한을 도움 받으며 목숨만 연명하는 상황을 보고 나니 왜, 살아계실때, 그리고 건강하실 때 할 수 있는 효도를 해야하는지, 물질적인 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정신적인거라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라면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고, 늘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아버지의 인생은 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양 어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이젠 늙어버린 작은 어깨를 지탱하기도 얼마나 힘겨울지, 아버지의 낡고 마른 얼굴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