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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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2013년에 처음 읽었던 자기 앞의 생. 5년 뒤에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좀 더 문장, 단어를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불편도 끼치지 않는데 왜 창녀로 등록된 여자들이 자녀를 키울 수 없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36p)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80p)

 어쩌다 사고로 아이를 낳게 되어서 그 아이를 기르려고 하면 당국의 조사를 받을 위험이 항상 있는데, 그건 정말 최악이라는 것이다. 일단 걸리면 가차없이 아이를 빼앗긴다고 했다. 이런 경우, 표적이 대상이 되는 것은 항상 엄마들인데, 아버지들은 수많은 법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라나.(96p)

 아무튼 나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120p)

"모모야, 항상 명심해라. 엉덩이는 말이다, 사람이 가진 것들 중 가장 신성한 것이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네 엉덩이를 절대 만지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네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엉덩이뿐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마라." (177p)

 노인들은 겉으로는 보잘것없이 초라해 보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그들도 여러분이나 나와 똑같이 느끼는데 자신들이 더이상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고통받는다.(204p)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2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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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과 우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평생에 창녀로 일을 하면서 창녀의 자식은 어머니가 창녀라는 이유로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키우지 못함을 알게 된다. 그런 아이를 맡아주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여러 아이들을 맡는다. 특히 모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게 된다. 모모가 자신의 나이를 자꾸 헷갈려 하는데 그건 로자 아줌마가 모모를 곁에 더 오래 두고 싶어서 나이를 속였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는 사고 치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절대 아이들을 학대하지 않고 그냥 신경안정제를 먹어버린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가끔 화를 내고, 막말을 해도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사랑을 안다. 로자 아줌마가 지병에 걸려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거동을 잘 못하게 되니 맡아둔 아이들이 다 떠나고 모모만 곁에 남았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정신 나간 모습을 보면 떠나고 싶다가도, 자신은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니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갈등을 겪는다. 모모는 항상 엄마와 아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그리워했는데 어느 날 아들을 찾는다는 자가 나타났다. 딱 봐도 모모의 아버진데 로자 아줌마는 자꾸 시치미를 뗀다. 창녀의 자식이 정신 질환까지 있으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모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진료를 봐주던 카츠 할아버지가 더 이상 로자 아줌마를 집안에 이렇게 둘 수 없다며 병원을 데려가려고 한다. 모모는 동물들도 시켜주는 안락사를 인간에게는 안 시켜준다고, 의사들의 실험 대상이 되기 싫다며 죽어도 병원 가기를 거부하는 로자 아줌마의 의사를 존중한다. 로자 아줌마가 두려울 때 숨는 지하 1층 공간으로 모모는 사람들 몰래 옮기고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중환자지만 존중하기 위해 그 나이대에 맞는 최선을 다한다. 로자 아줌마가 생전에 좋아했던 향수를 뿌려주고, 화장을 시켜주고, 예쁜 옷도 입혀준다. 로자 아줌마는 곧 숨을 거두게 되고 모모는 3주 동안이나 로자 아줌마의 곁을 지키다 냄새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다.

 모모는 매우 애늙은이같이 나온다. 그것의 실마리는 아버지가 등장하며 모모의 실제 나이인 14살이라고 밝혀지면서 의문은 풀린다. 모모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지만 사려 깊고 똑똑하며 감수성이 깊은 아이다. 평생 자식이 없었던 로자 아줌마와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모르는 모모. 사랑하고 때론 미워하는 이 관계가 여느 부모 자식 관계 같다. 정말 자식도 보기 힘들 수 있는 로자 아줌마의 지병으로 인한 행동에 모모는 너무 괴로워 집을 뛰쳐나가곤 하지만 결국 '돌봐야 할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로자 아줌마는 가끔씩 정신이 돌아왔을 때 모모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하며, 사랑하며, 미안해한다. 이제 로자 아줌마의 생은 끝이 났다. 앞으로 남은 모모의 생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까.


 [정신이 온전했을 때 로자 아줌마와 모모]

 [젊은 시절 로자 아줌마의 모습]
 정신이 오락가락 해질때마다 마치 예전 창녀 일을 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고 착각하듯이 이젠 작아서 맞지도 않은 야한 옷을 입고 교태를 부린다. 그 모습이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끝나가는 자신의 생을 아름다웠던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그때에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어서 그런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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