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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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의 아버지는 도마위에서 태어났고 자신은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첸은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리사가 된다. 만주국 관동군 사령관 오토조를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장교식당 요리사가 된다.

칼들은 어둡거나 밝거나 늘 그곳에 걸려 제 주인을 기다린다. 도마를 탁탁 내리치며 소임을 다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내리치는 것은 결국 빈 허공일 뿐이다. 재료들은 공간 속에 놓였다가 공간 속으로 소멸한다. -100p

요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칼이다. 모든 요리는 도마위에서 칼로 인해 손질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칼과 혀 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칼로 음식을 자를 수도 있지만 혀도 자를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 잠시나마 이 전쟁과 직위를 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요리를 먹고 나서 시게오와 가볍게 품평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요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21p

전시 상황에 사령관이라는 오토조는 이럴 듯 음식 생각밖에 하지 않는 무능한 상사다. 첸은 음식으로 오토조를 죽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지만 결국 첸이 만들어준 음식으로 오토조를 배불리고 생을 연장하게 만들어준다.

한입의 요리가 혀에 전해주는 진솔한 맛, 그 진실함을 위해 나는 계속해서 도마를 지배할 것이다. -166p
착각이 아니라면, 계획대로 나의 요리는 조금씩 사령관의 혀를 길들여가고 있다. 내가 이렇듯 목숨을 연장받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놈은 제 혀가 기억하는 죽 한 그릇의 고소함을 쉽게 물리치지 못할 것이다. -202p
혀가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음식이 와서 마구 보채는 것이다. 혀는 그 자리에 소처럼 누워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특유의 탐욕을 낼름 숨긴 채. -202p

보통 혀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평가하기 위한 혀도 존재한다. 음식은 평가하고 평가받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심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239p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 -304p

첸이 독살하려는 계획이 들통났음에도 오토조는 그의 혀를 반쯤 자를 뿐 죽이지 않는다. 또 화덕에 불을 지펴 주방을 불타게 했음에도 그를 죽이지 않는다. 개처럼 살게 하며 치욕을 주지만 절대 죽이진 않는다. 자신의 목숨과 첸의 요리를 맞바꾼 그는 원하는 요리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게 한다. 그에게 요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조선인 갈순은 오빠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걸어 오토조를 죽이기 위해 제 몸 하나 버린다.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라고 하는데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을 겪는 사람은 여자라고 생각된다. 전시상황에서 만주국 사령관 우두머리를 죽이기 위해 중, 한이 목숨을 건 행동들이 흡입력 있게 읽힌다. 단순히 살기 위해 요리하고 먹는다는 것에서 음식과 요리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볼 수 있다. 혀는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해낸다. 음식의 맛도 보고 욕도 하고 좋은 말도 하고 욕심을 내고 욕구를 해결한다. 그 혀에 오토조도 결국 혀가 잘린다.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서평을 쓰기에 조금 어렵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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