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박물관
아라리오뮤지엄 엮음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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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박물관.  실연에 관한 82개의 이야기.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었다.
누구도 실연이라는 아픔을 겪을 것이다. 그것이 연인 사이에서든 애완동물 사이에서든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든. 나 또한 실연이라는 경험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읽으면서 마치 내가 어제 이별한 것 같았다.

당신의 어여쁜손 꼭부여잡고
둘이서 같이 늙자 말하여셨지
맹세하던 그대는 먼저떠나고
한밤에 나만홀로 잠못이루네

흐리고 비바람이 차갑게불면
솥발산에 떠오르는 당신의모습
자나깨나 근심걱정
달이가고 해가간들 어이잊으리

이몸이 앞으로더 산다고해도
다시는 또만날수 없는그대를
차라리 당신없는 세상이라면
기다려 볼것없이 나도가야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남은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수첩에 남긴 글이라고 한다.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름다웠다. 나도 또한 이렇게 살고 싶다.

가장 좋았던 모습으로 간직하는 건, 이별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배려니까요. 잃었음을 슬퍼하는 대신 함께 있었음에 감사하면서 말이죠.

나의 삶은 점점 없어져 가고 나는 그저 가사노동만 하는 기계 같았다. 하지만 드디어 분가하게 되었다. 시댁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고무장갑을 기증하려 한다. 이제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과 고무장갑 사진을 보며 같은 며느리, 주부라 그런가 엄청 감정이입
이미 내 마음속으로 저 고무장갑 집어던졌다..............
얼마나 힘든 시기였기에 실연의 박물관에 기증 하며 놓아버리고 싶으셨을까

우리는 매일 새로움을 찾아내 흔적들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흔적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파란 대문'을 찾아서, 나와 너의 삶의 흔적 속으로.
예전에 살았던 집이 형체도 없어지고 다른 곳으로 바뀌어져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꼭 사람과의 이별만이 실연이 아닌, 장소와의 이별도 실연이구나 싶었다. 엄마가 예전에 외할아버지,할머니와 사셨던 집을 갔을 때 집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내리고 주위엔 온갖 잡초들로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며 아쉬워했던 모습이 그 때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외조모가 돌아가시고 혼자인 엄마가 일찍이 시집을 가 떠나살아 그 고향집에서의 부모와의 추억뿐인 엄마가, 그 추억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슬펐을까. 엄마가 보고 싶다.

기다림이 삶의 조건이 될 때, 많은 것들이 바뀐다. ...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말 같긴 해도, 나 같은 사람에겐 실현 불가능한 말이었다. 그가, 그녀가 누구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현재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 않는 이별을 한 사람에게는 누구든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어느새 불행에 중독되어 있었다. 고통은 많은 것들을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다. 선택의 의미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받았던 사람에게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내는 일이다.
불행에 중독된다는 말, 이거 남의 이야기 아닌 것 같다. 

풍경소리는 기억의 발자국이 울려 퍼지게 하였다. 그렇게 헤매며 찾아다니는 행복은 발견의 문제일 뿐, 성취가 아님을. 진정한 여행은 낯선 곳에서 돌아와 내가 살던 집에 다시 짐을 풀면서 시작되며 그 사실을 깨우치려고 여러 번 짐을 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자신 없는 방황과 이별을 했다.

이제 나는 실연이라는 단어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며 풋사랑에 대해 웃으면 어떡하지? 생각했으나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서 놓아줄 것들을 놓을 준비가 된 것 같다.
실질적인 물체는 없지만 내 마음속 깊숙히 버리지 못하는 것들.

82명의 다양한 사람의 비밀이야기를 몰래 듣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 쌩뚱맞지만 사람은 역시 누구나 다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인과의 이별에서는 20대 초반 분들 이야기라 아줌마인 내가 "괜찮아 좋은사람 많아"라고 책을 읽으면서 말을 해주고 앉아있다...

사랑이 한 종류의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실연도 한 종류의 실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겪을 많은 헤어짐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 하나가 아닌 여러가지 방안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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