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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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간직하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18p

마치 사랑이 시작될 때처럼, 그리고 너, 마치 오렌지 빛깔의 꽃처럼. 이제껏 너 없이도 잘 살아온 나의 세계에 나 몰래 들어와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깊은 땅으로부터 물을 끌어 올려 줄기를 살찌우고 봉오리를 맺고 어느새 흐드러진 꽃을 피우는, 그러면서도 태연한 얼굴로 '이곳이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하고 이야기하는, 하지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오렌지 빛깔의 꽃과 같은 수많은 당신들.
식물의 모양을 한 사랑이 가장 나쁜 것이다.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그 사랑을 돌보는 동안, 내 손은 부르트고 거칠어질 것이다. 상처는 덧없고 열매는 맺히지 않을 것이다.-27p

"물건에도 어떤 기억이 머물러 있는 거야. 네가 그걸 오래 간직했다면 그 물건은 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러니 그 물건을 함부로 버린다는 건 너의 기억 중 일부를 함부로 버린다는 거야."-56p

감정을 숨기기에는 너무 오래된 존재가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오는, 부딪치면 상처를 받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존재. 나는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나를 사랑하지 않기에는 너무 긴 세월이었다.-72p

마지막 햇살이 지평선을 물들인다. 이제 곧 어두워질 것이다. 지평선을 넘어가면, 다른 세계가 있을까. 하지만 그곳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 하늘과 땅은 만날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지평선은 없다.
빛들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나는 사탕의 성분을 알고 있다. 그건 '포기'라는 이름의, 퍼석퍼석한 맛이 나는 에너지다. 내가 그 사탕을 막 입안에 넣으려고 할 때, 날은 완전히 어두워진다. 지평선이 사라진다. 하늘과 땅이 같은 빛깔로 세계를 감싸 안는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고, 나는 사탕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은 또 하나의 지평선이다.-117p

세상에는 가끔, 반성하지 않아도 좋을 절망이 있는 법이다.-124p

뭔가…하나의 시기를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심장이 빨리 뛰고, 어지러워지고, 이유없이 눈물이 나는 일 같은건, 지나간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잉른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170p

천천히 세상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었다.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산 위에서 수천 개의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죽지 않으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자연이 남아 있으니까.'
자연은 마지막으로 가녀린 숨을 내쉬고, 나를 끌어안으며 호흡을 멈추었다.-188p

석고상들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그들을 그리고 있을 때면 뇌 안 어딘가에 고여 있는 눅눅한 수분들이 차차 말라가는 것 같았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내가 소모해야 할 시간들은 나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었다.-204p

가을은 가끔 공기 속에, 은밀히 몇 방울의 술을 떵러뜨린다. 어떤 이들은 그걸 '빛나는 술'이라 부른다. 공기를 호흡하다 우연히 그 술을 마신 사람은, 그 순간 가을 속에 남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을이 이토록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은, 몇몇 이들에게 가을이 영원하기 때문이다.-224p

내가 살아 있어도 괜찮을, 시시하지 않은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다. 살아가는 것은, 계속해서 살아 있고 싶은 것은, 사소하고 시시한 이유들 때문인지도.-283p


 

책을 읽다보면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가끔은 상상해보았던 생각들이 이 책에서 작가에 의해 서술되어 있다.
말하는 동물들, 천사, 말하는 인형들, 행운과 불행의 동전, 산타클로스.… 등등
동경하던 곰스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지만 기차를 놓치고 돈이 없어 한 마을에 머물면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남자는 곰스크로 가는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 남자는 불행할까? 어차피 인생이란 모두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니까 그건 그것대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지않을까라고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우울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실패한 경험 또한 소중한 시간이었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단 걸 느끼게 된다.

이별하는 날, 어떤 날씨였으면 좋을까? 날씨를 파는 사람이 있다. 만약 내가 이별을 결심한다면 어떤 날씨를 요청할까? 이별은 슬픈 거니까, 많이 울테니까,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나는 추억이 담긴 물건을 버릴 때 다섯번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내 추억과 정이 서려있어 그런것이지만,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기억 중 일부를 함부로 버린다는 얘기를 보고,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그 시절에 그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낸 추억과 기억이 담겨 있는 물건이다. 어떨 때는 물건을 버렸는데 더 우울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 기억과 이제는 영영 헤어지는 것 같아서. 그 물건을 더이상 보지못하니 가끔이라도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사람은 괴로운 기억이 있을 때 떠오르지 않기 위해 물건들을 버리고, 태우고 하는 것일까?

내가 울때마다 사진을 찍어놓았다면, 나중에 그 사진들을 보았을 때 그 당시 무슨 일 때문에 슬퍼서, 아니면 화가나서 울었는지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울고 있는 그 당시는 너무나 슬픔을 이겨낼 수 없어 나도 모르게 울게 된다. 어쩌면 죽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 훗날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러겠지. 나 이때 왜 울었지? 되게 서럽게 울었네.라고. 결국 마찬가지인거다.

완벽한 룸메이트를 만나면 행복할 것 같은데, 그건 완벽한 남편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걸까.
하지만 그 완벽한 파트너가 사라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면 되돌아오는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무엇이든 사라지고 나타나는 마을이 있다. 음식, 물건, 집 등등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한다.
가끔 항상 있는 존재에 대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주위에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한다면 나타났을 때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무엇이든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초콜릿우체국이 있다. 초콜릿을 소포로 보내주는 우체국이다. 특이한 점은 삼 년 전, 오 년 전 또는 십 년 전의 누군가에게, 삼 년 전, 오 년 전, 또는 십 년 전의 내가 초콜릿을 보낸다. 그런 우체국이 있다면 헤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후회라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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