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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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표지에 38 True stories & Innocent lies로 짐작할 수 있듯이 진실, 그리고 거짓으로 이루어져있다.

가볍게 읽히나 가벼운 내용은 아닌 그런 책. 소재가 신선하고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워서 나 또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여행을 대신해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여행을 의뢰한다. 과연 직접 여행하지도 않으면서 돈을 내고 대신 여행해달라는 사람이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이해가 안가지만 후에 이런 직업이 생길 것도 같다. 요즘은 SNS 통해 나의 실시간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 내가 SNS을 안한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여행을 대신 해달라고 의뢰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혼자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여행중'이라는 연극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외로움을 타는 동시에 외로움을 갈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소꿉친구, 베스트프렌드인 엄마들에 의해 항상 함께 하게 된 남녀. 물론 많이 싸우기도 하고 다신 안본다 생각도 했지만 그 둘이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한다. 더이상 맥이 빠져 싸울 힘이 안난다고 하는데, 맥이 빠진게 아니라 행복하기에 더이상 싸울 일이 없는것이 아닐까.
싸우는것도 지겨워서 안싸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실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기에 싸울 일이 없는 거 일수도...

한남자를 동시에 좋아한 여자 둘. 그 남자가 그 둘 사이를 저울질하다 사라져버렸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여자들도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사랑은 봄보다 빨리 왔다가 서둘러갔다.

책갈피 이야기도 나온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책갈피의 삶. 그냥 책갈피니까. 
한참을 혹은 평생 서점의 책에 꽂혀있을 수도 있는 책갈피는 자신을 잘 활용해주는 여자를 만나 여러가지 책을 읽으며 행복했던 나날을 보냈다. 낯선남자와 '르두테의 장미' 그림을 보다 나를 떨어뜨렸으나 그녀의 따뜻하고 하얀 손은 나를 집어 올리는 대신 낯선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한참을 그녀를 기다렸고 아무도 땅에 떨어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땅 속에 씨앗이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이내 그녀를 기다리는 것 보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내서 장미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갈피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하나의 씨앗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흙 같은 것이.

그러니 그대, 사라지는 것, 떠나는 것,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거리가 없다면, 우리 사이에 바람도 불지 않을 테니까. -57p

나는 마음을 샀다. 당신을 만나 상처받은 내 마음은, 따뜻한 시간 속에서 다시 아문다. -63p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타는 연애를 끝내고 이별 후 죽을듯한 통증에서 상처받은 내 마음을 갖다버리고 새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다. 그 새 마음도 또 누군가를 만나 뜨겁게 사랑한 후 너덜너덜해질것이라는거.

내 생에 마지막 날 천사와 악마를 만나 대화하는 글이 있다. 내가 겪었고 지내왔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며 나누었다. 내 생에 첫날이 시작이 되었다. 그 날 이후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 내가 보낸 시간, 사랑하는 사람,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보다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보통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지나온 것에 대한 후회만 한다.  나는 내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말고 지금 내 주변에 모든 것들을 더 좋아할 수 있을까.

우물 안에 살며 하루에 한통의 편지로 카운슬러 활동을 하며 사는 사람이 나온다.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고 갇혀지내면서 어떻게 남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과잉된 삶을 피하고 삶을 단순하게 만들면 복잡한 문제에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까?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매일의 작은 축제, 고요한 축복으로 차 있는 날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면 내 인생은 좀 더 빛날 수 있을까.

세상에 현명한 사랑은 없답니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행복한 바보가 되세요. 만약 사랑에 빠질 수가 없어 안달하고 있다면, 그냥 행복한 방관자가 되세요. 잘 안되면, 마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랍니다. -129p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마시는 시간.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이별을 하는거야."
"그렇게 하면, 이별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나요?"
"이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아. 너무 성급하게 마시면 마음을 데고, 너무 천천히 마시면 이미 식어버린 마음에서 쓴맛이 나. 이별을 잘 견딜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어. 지금 네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하면, 시간이 흐른 후에도 향기는 남는 거니까." -182p

미친듯이 사랑하는 것은 그를 만나기 전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로움 후 누굴 만나 사랑하면 더 격렬히 사랑하려고 할 수록 이전의 외로움으로 돌아가기 싫어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 이별, 셰익스피어나 베르테르,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거짓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하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이럴수도 있겠구나..하는 상상력마저 자극하게 된다. 작가의 필력또한 잔잔하지만 책 속으로 빠져들어 금세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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