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 - 여자들에게만 보이는 지긋지긋한 감정노동에 대하여
제마 하틀리 지음, 노지양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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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그러나 요청하기, 좋은 말로 부탁하기는 추가되는 감정노동일 뿐이다. 일을 배분하고 지시하려면 반복적으로 요청해야 하고 그것은 종종 잔소리로 여겨진다.p17

나는 모든 집안일을 세세하게 관리감독하고 지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동등한 주도권을 갖는 파트너를 원한다. p23

쓰레기를 버리는 건 좋다. 그러나 우리는 파트너가 쓰레기통을 지금 비워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챌 만큼 나와 동등한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 p24

감정노동은 일의 결과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언어, 행동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을 신경 쓰는 일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여성은 대가 없이, 주변 모든 사람을 무슨 일이 있어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p33


p76

"제대로 해내야 한다"라는 압박감은 이전의 어떤 경험과도 달랐고 강도도 높았다. 아기를 만든 건 우리 두 사람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오직 나였기 때문이다. p82


p111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남의 눈치를 보고 살라고 강요당한다. 동등한 연애관계에서도 파트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보고 감정을 숨긴다. 그것이 사랑해서 맞춰주고 싶은 거일 수도 혹은 맞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서로가 함께 사랑하지만 남자에게는 연애하기 직전 사귀기 전에만 잠시 감정노동을 할 뿐이다.

여자들은 "기대하는 게 너무 많아서" 지쳐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지쳐버린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의 해답인 것처럼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의 일이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일회용 물건인 것처럼 말이다. p123

"힘들면 그만해"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음식이 눌어붙은 식기가 쌓여있는 싱크대를 보는 일도 걸어갈 때마다 장난감을 피해야 하는 방도 매일매일 계란 프라이만 먹이고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지내는 아이를 볼 수 없다. 여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번에 안다. 남자들은 감정노동이라는 걸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우리에게 감정노동과 가사노동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건 호의가 아니다. 애초에 왜 감정노동을 맡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p126

나는 돌봄노동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다른 사람도 나만큼 신경 쓰길 바란다. p127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지 않는 남자들에게 삶이 더 편할 수는 있겠지만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노동을 무시할 때 남성들은 자기 삶의 수동적인 구경꾼이 된다. p145

ㅡ감정노동을 대신 해주는 파트너가 죽고 나서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 그들은 파트너만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방법까지 잃은 것이다. 감정노동은 여성들의 편의를 위해서 함께 해야하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해야한다.


p173

여성들이 처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음식이 떨어지기 전에 장을 보고 채워놓는 것,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는 것, 아이들의 옷이 떨어지지 않게 사계절 옷의 개수와 상태를 파악해 미리 준비해놓는 것, 치우고 돌아서자마자 어지르는 장난감을 다시 치우는 것, 밥을 먹고 나서 상을 닦는 것, 설거지 후 마른 그릇을 선반에 올려놓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을 하기 싫단 게 아니다. 다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업주부 말고도 워킹맘들도 집안의 감정노동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소진시킨다. 유난히 여성들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여성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면 예전 세대 할머니 어머니들은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하는 감정노동의 반의 반만 해도 칭송받는다.

내 평생 이보다 더 열심히 일한 적은 없었지만 나의 사회적 위치는 이보다 더 낮을 순 없었다 p174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처음이다. 여자는 그 작은 인간을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사망하지 않기 위해서, 애착관계가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그와 동시에 집안이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 내내 신경을 쓴다. 그러나 사회적 위치론 그저 집에서 놀고먹는 한심한 아줌마다.

"남성들이 아직 정복하지 않은 가장 큰 세계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세계"라고 말한다. p193

어쩌면 우리는 남성들에게 돌보는 세계를 하지 못한다고 지레 생각하고 경험의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들이 못할 수도 있다.


p239

여성들은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감정노동과 실력을 겸비해야한다. 남성과 같은 선상에 서기 위해서 여성은 두 배 넘게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가 수행한 감정노동을 면밀히 조사하는 이유는 범죄를 저지른 남성보다 피해당한 여성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때문이다. 강간 문화는 피해자들이 최초 경험을 말하기 두렵게 한다. (…) 강간범의 "창창한 미래"가 피해자의 고통보다 중시된다. p245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비웃을까 봐 두렵고,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우리의 감정 조절과 행동 조절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자기 보호가 자리하고 있다. p251

ㅡ왜 맞고 사냐, 맞서라고 말한다. 맞섰을 때 마지막은 죽음이란 걸 시시때때로 목격했기 때문에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으라"는 어이없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 무서워서 받아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p262

아이슬란드 남성에게 남자다움이란 남녀의 동등한 힘을 믿고 실천하는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p287

여성들이 떨쳐버려야 할 문화는 감정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보는 문화는 아니다. 우리의 감정노동이 인정받고 칭찬받을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 있다. 그 지점에서 바꾸어야 할 쪽은 남성이다. 여성들이 버려야 할 것은 완벽주의 성향이다. 이것은 곧 통제 성향으로 이어지고 누구도 우리처럼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서사를 믿게 한다. p323

감정노동은 내려놓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정노동의 힘을 이해하고 계발하길 바란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이해하는 파트너를, 이해에서 나온 결속을 원한다. 우리와 똑같이 참여하고 책임을 지고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파트너를 원한다. p331

p339

나는 목격되고 싶었다. 나는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었다. 내가 하는 매일의 감정노동이 가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p340

p345

오죽하면 집안일하느라 힘들었다는 말 한마디에 여자들이 눈물을 터뜨릴까 노동의 강도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그 노동은 그림자노동으로 값이 매겨지지 않는다. 시키면 하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물리적인 할 일을 조금 덜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이는 수많은 것들이 남편의 눈에도 함께 보이기를,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남편이 시키면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고 기분이 나빴던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도 함께 실시간으로 공유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아내가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감정노동에 대해 토론할 의향이 있다면 꼭 부부가 같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일단 나의 완벽주의 성향, 그러니까 내가 해치우는 것처럼 해주길 바라는 높은 기대를 버려야 한다. 스스로가 내가 있어야 집이 돌아간다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기다려주어야 한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편도 과도기가 필요한거다. 이것도 노동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해내기에 적응기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전히 나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터라 감정노동을 반씩 딱 나누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남편이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나서서 하려고 한다. 남편이 하려고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마음에 들고 더 빨라서란 이유다. 남편의 기분이나 나의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다. 남편이 감정노동을 함께 나눌 의지가 있다면 나도 지켜봐 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남편이 자기는 나처럼 멀티플레이가 안된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가능했을까. 계속 내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다 처리하기 위해선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변화한 건 아닐까. 자신의 일이란 걸 자각하고 반복하다 보면 남편도 남편 나름의 순서를 갖게 되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 믿는다. 여성이 사회진출을 하고 미약하게나마 유리천장을 깨곤 있지만 여전히 감정노동은 여성이 대부분 처리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처럼 나라가 나서서 평등을 이루려고 해도 남성들의 지지가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 가정에서부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그래서 우리 아이는 감정노동을 모르고 살기도, 혼자서 다 짊어내려 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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