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병률 시인의 책을 처음 접해봤다. 한두 번 읽었던 산문집이 좀 지루했던 터라 산문집은 지루하다는 나만의 공식을 갖고 있었는데 시와 산문 그리고 에세이의 복합체를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제목 <혼자가 혼자에게> 와 옷이 무심하게 걸려 있는 빈 의자 그림은 마치 나를 위해 한자리 내어준 듯한 기분이 든다.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실제로 누구와 대화 나누는 것보단 혼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는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겠지만 나는 혼자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기에 내가 누구인가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그려볼 수 있으며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혼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나는 그 세계에서 주인공이 된다. 내가 스스로 설계하여 인생을 선택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주도적인 상태가 된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그렇게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기척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 나는 연기하듯 인기척을 내면서 의식한다.

239p

파트너가 내게 관심이 없어 보일 때 우리는 부러 한번 건드려본다. 볼에 뽀뽀도 해보고, 손도 잡아보고, 백허그도 해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인기척을 내본다. '나 한 번 봐 달라'라는 의미로. 사랑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관해 많은 철학자, 작가, 혹은 많이 배우신 분들이 답한다. 모든 답은 다 다르다. 사랑이 특별하다고 하기도, 사랑이 별것 아니기도 하기도,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회의론자들까지. 결국 관심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하질 않는가. 인기척을 내어 관심 가져달라,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한다 그 말이다.

가족은 그림 같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 가족은 그저 하나의 억지스러운 그림에 불과하다.

p295

나라에서 주입한 이상적인 가족상은 이성으로 구성된 부부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남자 둘 여자 둘이 고루 섞인 가족이다. 이젠 자발적으로 비혼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그 오지랖 유전자는 어디 가겠는가. 자신들이 정의 내린 가족상에 들어있지 않으면 불행하고 어딘가 모자란다며 함부로 판단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겐 가족이 억지스러운 그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구나 싶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연기를 하고 사니까.

혼자 사는 인생, 혼자만 오롯이 책임지면 되는 인생, 혼자만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인생, 자신의 두 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혼자만의 삶, 그저 내가 보기에 자유로운 그 삶이 부러워 보였다. 나중에 삶의 터전과 가진 것을 모두 챙겨 살아갈 나라를 정하기 위해 세계 각국 여행을 떠나고, 그 나라에서 잠시나마 온전히 흡수되어 살아가보는 여행은 아마 내가 앞으로 가질 수 없는 삶이겠다. 책을 읽고 작가가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보았다. 음,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살짝 다른 느낌. 나는 뭘 상상했던 걸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