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 무례한 세상 속 페미니스트 엄마의 고군분투 육아 일기
박한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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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예전엔 남아선호사상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여아선호사상같다. 아들이 셋이라고 하면 다들 불쌍하다는 눈초리로, 어떡하냐고 직설적으로 묻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 듣는대서 막내가 딸이었어야 한다고, 아들은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망언까지 내뱉는다. 남자아이들은 너무 설쳐서 키우기 힘들다는 편견, 여자아이들은 너무 징징거려 정신적으로 지치게 한다는 편견, 남자아이는 전부다 공룡 자동차를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좋아한다는 편견, 그런 편견들이 남자처럼 행동하는 아이, 여자처럼 행동하는 아이로 길러지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나도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을 작가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다른 점은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남녀평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것. 나도 책을 읽을 때 의사는 선생님(남자로 나옴) 간호사는 누나(여자)라고 적혀 있는 책을 일부로 똑같이 선생님을 붙여서 읽어준다거나, 가족차를 보고 '아빠 차'라고 하면 '엄마아빠차'혹은 '우리차'라고 정정시켜준다. 누군가는 작가나 나를 보면서 '유난떤다'고 할 수 있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있기에, 나는 불평등하게 자랐지만 우리 아이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등을 이룬 세상에서 살아가게끔 하고 싶기에 발악을 하는 거다.

아이를 낳고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 중 하나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나는 무례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폐를 끼칠 수밖에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사과해야 할 일투성이었다. 아이는 남의 물건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고 의자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걸 몰랐다. 또, 어째서 실내에서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면 안 되는지도 몰랐다. (…) 이처럼 민폐를 끼치는 건 '아이와 부모'만이 아니다. (…) 약자가 늘 '옳고 선한' 피해자는 아니다. 약자는 '개인'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p55~56)

'ㅇㅇ녀'가 되지 않기 위해, 혹은 'ㅇㅇ녀'가 되기 위해 애쓰던 흑역사를 다시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공중도덕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나와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이와 나를 향한 무례함에도 당당히 맞설 것이다. 나는 개념맘도 맘충도 아니다. 나에게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p64)

회사원 시절에는 눈치가 좀 보이더라도 휴가라는 것을 써서 일과 나를 떼어놓을 수 있었지만 양육자의 사정이란 복잡했다. 내 인생은 일시 정지시키더라도 아이의 시간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의 시간에 저당 잡혀 이리로 저리로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걸. 엄마가 된 이상 '업무 공백'따위는 없다는 사실을.(p144)

임신과 출산은 내 몸에 너무 많은 타격을 입혔다. 그야말로 백해무익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각종 패널티가 그뿐만은 아니다. 경력 단절, 맘충, 노키즈존 등을 모두 포함하면 '아이 낳은 여자로 살아가기'를 차마 다른 누군가에게 원할 수도, 이런 선택지가 존재한다고조차 얘기할 수가 없다. (p266)

아이의 삶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시기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고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를 접하며 부모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키울수록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양육자 개인과 가정의 한계다. (p275-276)

아이를 낳은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한다. 제주도는 내게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노키즈존이 가장 많다는 말에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되었다. 약자들에게만 패널티를 주는 사장들을 곱게 보이지 않는다. 어딜가나 무례한 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약자인 '아이'만 거부한다. 그것은 약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다. 아무래도 나는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약자에 대한 불평등과 혐오에 관련된 책을 읽기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하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별나다고 할 수 있는 성평등을 위한 작가의 생각과 노력을 남편이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따라가준다고 하니 참 부러웠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람을 응원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한국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라고 여자에게 요구한다. 아이를 낳는 주체도 여성인데 시부모님이, 남편이, 사회가, 나라가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한다. 나라는 저출생 문제로 골머리를 썩겠지만 정책부터가 글러먹었다. 비혼주의, 딩크족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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