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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평점 :

근린이 뭐에요? 근린이란 근린생활시설이다. 상가로 준공 허가를 받은 다음 주거용으로 바꾼 거다. 당연히 불법으로 신고당하면 벌금은 물론 쫓겨난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형태로 산다. 20대 성실한 청년 상욱은 지하생활자 3년 옥탑생활자 2넌 고시생활자를 전전하다 부동산 사장의 말만 믿고 최대로 빚을 지어 근린이 된다. 신고로 인해 쫓겨나게 되었고 그 친절하고 아무 걱정하지말라던 믿음직스럽던 부동산 사장은 이런적이 없었다, 지하철도 예정이라그랬지 기다리다보면 '확정'될거다 라는 말장난을 쳐서 20대 젊은 청년을 한번 더 죽인다. 말장난해서 순진한 젊은이들 등처먹는 늙은이들 진짜 극혐이다.
한평생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고 뼈 빠지게 일해서 이만큼 살게 하고 대학 교육까지 시켜놓으니 자식들은 지 어미 편만 들었다. 그나마 최소한의 자식 노릇도 (실제론 남지도 않은) 퇴직금과 그의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채 바라보고 그런다는 걸 순병 씨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마누라는 이런 자식들 뒤에서 우는소리만 해댔다. 나이 들었다고 가만뒀더니 자꾸 잔소리나 해대며 소리나 빽빽 질러대기에 손 한번 올렸다고 당장 짐을 싸서 나갔다. 순병 씨는 그런 마누라가 원망스러웠다. 숙이고 들어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받아줄 생각이었는데 벌써 5개월째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 소원은 통일 p73
열렬한 태극기부대 일원이었다가 북한과 걸친 땅을 사고 난 이후 진보주의자가 된 할아버지. 진보주의자가 집을 사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더니 사람들 참 웃기다. 자기 이익에 반하여 진보가 되었다가 보수가 되었다가 이기적이다. 한평생 돈 벌어다줬더니 잔소리 한다고 아내를 때려놓고 당당한 개극혐 할아버지..
그가 이 일을 하기 전에 거쳤던 일들, 그러니까 지하철 스크린도어 작업이나 하수관 청소도 그랬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 위험했고 그동안 그에게 주어졌던 일은 대개 그런 일들이었다. / 그것 p131
"큰 죄를 덮기 위해선 작은 죄를 곁에 둬라."
아버지는 어린 그를 가르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돌아갔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의 죄를 덮기 위해 별거 아닌 이들의, 별거 아닌 죄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자극적인 연예인 스캔들이 터지고, 꼬리나 깃털에도 못 미치는 이들의 작은 죄가 요란하게 주목받았다. 그래야 실세는 안전한 곳에서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린 그를 이용해왔듯이.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 그것 p147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하찮은 처지에 화가 났다. 배움이 좀 더 길었다면, 조금 더 돈이 많았다면, 아니 자신이 그러지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알기라도 했다면 부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 p167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좋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그것'을 처리하는 자신이 '그것'을 묻지 않는 곳에 동생 부부가 농사를 짓게 도와주었다. 동생 부부는 암이 걸렸다. 그 동네 사람들 8명이 암이 걸렸다. 근처 비료공장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검사결과만 나왔다. 배후가 있다고 도청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난 후 동생 남편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회사 사장, 공무원 모두 입을 닫는다. 그는 동생 부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변호사도 찾아가보고 신문사에도 투고하지만 자신의 하찮은 처지가 진실을 밝히지 못할 걸 알고 전면전을 펼치고.. 그 또한 동생 부부처럼 죽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원하는 무언가가 성취된 적이 없는 그였다. 다른 인생을 살아본 적 없으니 비교할 생도 없었다. '그래야 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왔듯' 침묵하고 운명을 탓해야 했다. /삿갓조개 p185
돈 받아처먹고 무능한 공무원들의 실체를 덮기 위해 고용된 비정규직 삿갓조개 제거반들. 산소가 모자라 이명과 두통에 시달린다. 월급 5만원 올려주고 지급된 산소통을 사비로 사라고 하는 회사에게 시급 900원 올려달라 시위하기 위해 도수관에 들어간다. 그런 그들에게 최루탄을 던지고, 최루탄 맞은 눈이 너무 아파 생수로 씻는 모습을 기자가 사진을 찍어 '물도, 산소도 충분하다'고 날림 기사를 쓰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도수관 밖으로 나가거나 죽었다.
모든 걸 잃게 한 도벽이 지금의 날 밥 먹게 했다.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자 언니도 그랬다. 너무 가난해서 몸을 팔았는데 그러다 보니 더 가난해졌다. 그 때문에 병에 걸렸고 아기는 낳자마자 죽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가난과 불행에 빠트리게 한, 몸 파는 짓으로 지금 밥 먹고 산다. 인생의 덜미가 잡힌 것이 나머지 인생을 살게 한다는 게 미자 언니와 나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 사마리아 여인들 p225
박카스 할머니와 도벽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된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산에서 혼자 온 노인에게 몸을 파는 미자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허세 부리고 이상한 요구를 하면서 늙어빠진 할머니라며 욕하며 내려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구역질이 났다. 아직도 자신이 한창인 줄 알지. 자기 비위 맞쳐주고 하니 뭐라도 된 것 처럼.
청소기의 혁명 소설에선 한 중소기업에서 뼈를 묻겠다고 입사 때 약속을 했다고 신제품을 만들어 S사에 좋은 조건에 이직 제의가 들어왔는데도 거절한다. 어떻게 보면 바보같고 순진한 사내는 헌신했지만 헌신짝 취급을 받는다. 자신이 만든 청소기를 재고떨이하라고 판매원으로 강등처분 당한다. 사비로 자신의 청소기를 사기도 하고 실컷 쓰고 환불당한 청소기들도 회사로 처리하지 않고 언젠가 다시 찾으러 올 거라며 집안에 쌓아 놓는 미련한 사람이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청소기 안에 있는 고양이 털, 아이의 머리카락, 손톱... 그걸 전해주기 위해 회사가 다른 회사에 싼 값에 팔려나갔을 때도 묵묵히 판매원 자리를 지킨다. 해맑고 밝은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의 엄마가 지나갈 때 여자아이의 흔적이 남은 청소기를 전해준다. 세월호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하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기억하는 사람은 있다.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