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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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밤중에 깨어 연필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믿으세요. 자신이 얼마나 시간을 느리게 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삶의 결을 꼼꼼히 그리고 만져볼 수 있게 만드는지, 자신을 믿기 바랍니다.(p40)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읽다 자꾸 베인다. 다쳐도 피가 나지 않는 상처가 있다.(p62)

휴가는 '인생'이란 큰 덩어리에 갈라진 틈, 어떤 '사이'에 도착하는 것이다. '사이'에서 우리는 목적에서 놓여나 자연스럽게 머물거나 스밀 수 있다. (p119)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엄마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p160)

뭐든 어릴 때 배워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그냥'하다가 잘하게 되고, 어른들은 '잘' 하려다 그냥 하게 된다. 아이처럼,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냥' 해야겠다.(p176)

여성이고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겨냥해 쏟아진 총알들! 어떤 남자들에게 '어린 여성'은 사람이 아닌 '사냥감'이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누군가는 관심의 총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예로부터 '원래' 난무하던 총알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혹은 남자는 구조적으로 '쏠 수밖에 없게' 생겨먹은 존재라며,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분도 있었다. 대개는 걔들이 쏘았지만, 더러는 멀쩡한 양반들이 놀이 삼아 쏘아대기도 했다.(p223)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한정해 마구 가져다 쓰는 것은 본성의 일이고, 여성들이 성을 까발리고 상처 입은 '과정'을 뒤집어 파헤쳐 보이는 것은 천박한 것이다. 시가 채 못 되는 '혐오스러운' 일인지, 시가 무엇인지를.(p226)

시와 산문과 책 소개가 함께하는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인생은 참 이상하게 흐른다. 정말로, 내가 아이 셋의 엄마가 될 줄은, 심지어 아들 셋의 엄마가, 그리고 그중 한 아이는 희귀난치진단을 받을 줄은 몰랐다. 마침 이 책을 읽을 때 내 아이는 검사를 위해 오랜 금식으로 인한 고통의 울음과, 약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책이 슬프게 다가왔다. 책이란, 읽는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됨이 마련인데, 아마 힘들고 슬프고 지칠 때 읽어서 제목이 크게 와 닿은 것 같다. 작은 소품 하나, 작은 이야기 하나, 작은 가게 하나 등 모든 작은 것들로 인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내가 가보지 못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지만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단 작가가 여자라는 것에 1차 놀랐고, 기혼이라는 것에 2차 놀랐다. 왜 놀랐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젊은 남자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었나보다. 그녀의 글 중에 그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글이 있었는데 한사람이 한 사람을 다 알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먼저 만났다고 더 안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25세의 이른 나이에 문단한 그녀는 남자들의 총알을 그대로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에 따라가지 않았다고 문자 폭격을 맞은 이후로 그녀는 거친 문자만 보아도 두근거린다고 한다. 왜 젊은 여자는 총알받이가 되어야만 할까. 아이러니한 것은 나이가 들수록 그 총알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 지금이야 MeToo를 통해 폐쇄적인 집단에서 만연했던 성에 관련한 사건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상처 받은 여성들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대해 덤덤하게 풀어가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니 그녀의 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그녀가 책과 노트만 가지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모습이 상상된다. 조용한 파주 집안 쇼파에 앉아 남편의 어깨를 주무르는 모습이 상상 된다. 일상의 글을 남겨보고 싶다. 아이가 아픈 후로, 더욱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짧고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내 몸의 시계가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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