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담아줘 새소설 2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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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덕질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다. 아이돌을 좋아했던 시절을 처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학교 2학년 때 클릭비의 태형을 잠시 좋아했던 것 같다.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동방신기를 좀 좋아했고. 내게 좋아했다는 건 티비에 가요프로그램에 나오면 보고, 유튜브로 한두 번 검색해서 봤다는 정도다. 덕질에 'ㄷ'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사생팬들에 대해 말이 많고 '덕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리기도 한다. 요즘 나의 최애 웹툰은 <유일무이 로맨스>다. 성공한 덕후가 나오는 웹툰인데 댓글을 보면 최고의 판타지라고 한다. 연예인을 그렇게까지 좋아해보지 않은 내가 봐도 두근두근하고 가슴이 벌렁벌렁거리는데 연예인을 덕질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대리만족할 것 같다.

함께 공연을 보러 가서 제나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면, 이게 사랑이지 다른 게 사랑일까 싶었다. 나는 나 자신보다 제나의 눈을 보면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사랑이라는 확신이 생겼었다.

43p

내 아이돌은, 나의 최애 우리 루이는 무척 신나 보였다.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웃었다. 나는 그의 웃음을 아꼈다. 그가 웃으면 내 세상도 밝아졌다. 그의 밝음이 내게로 흘러들어 내 발밑을 환하게 밝혔다. 그러면 어디로 발을 옮길지 겁내지 않아도 됐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이 수많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나는 그것을 절대 질투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도 않았다. 그는 빛나는 사람이니까 더 많이 나누어줘도 나에겐 충분했다.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이어도 괜찮았다. 멀어서 좋은 관계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66-67p

주주는 나에게 감정의 끝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사랑의 끝, 미움의 끝, 행복의 끝, 증오의 끝, 슬픔의 끝, 분노의 끝, 허무의 끝, 환희의 끝. 주주는 혼자 있는 나의 바다에 바람을 불게 하고 파도를 치게 하고 배를 띄웠다. 내 바다는 고요할 날이 없었다. 나는 매일 요동치며 그를 사랑하고 원망하고 좋아하면서 미워했다. 양극단에 있는 감정이 한 번에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주주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없는 내 삶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120p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너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너의 노래는 따뜻한 손이 되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너의 눈빛은 너른 품이 되어 나를 안아주었다. 그것은 네 바로 옆에 있을 애인이나 가족이나 친구는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다.

169p

한 살 더 먹었지만 나는 연애 대신 달달한 팬질을 다시 시작했다. 거리감에 무력감에 울게 될 걸 알면서도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사실 그들은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까웠다. 내 일상을 흔들고 현실을 뒤엎으며 생활을 조이는.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들을 보고 싶었고 더 가까이로 가고 싶었다. 그들은 별이고 꿈이었다. 꿈 없이 일상에만 갇혀 살아가는 내게 그들은 우주를 건네주었다.

267p

아이돌 키워야 하니 육아휴직 받아야 한다고 농담하는 장면을 보고서 아이돌을 사랑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양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하며,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모든 걸 주어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며, 후회가 되더라도 만나기 전의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 성공한 덕후를 보면 덕후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특히 외국어 공부할 때. 좋아하는 외국 연예인이 있으면 언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는데, 전혀 없으니 의욕이 살지 않는다. 제나는 성공한 덕후다. 덕질하다 일본어 번역가가 되었고 이젠 중국 출신 연예인 덕질을 시작해서 중국어 학원을 등록했다고 한다. 팬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느끼면서 글만 봐도 느껴지는 생생한 에너지에 조금 부럽기도 하다. 읽는 내내 너무 유쾌했고 세 친구의 우정이 부러웠다. 작가가 2n째 덕질을 한다는데 생동감이 넘친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잘한다고 하지 않는가. 작가가 덕질을 좋아하니 소설도 재미있게 잘 쓴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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