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종 때부터 조선의 현종 때까지 무려 500년이 넘도록 수천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시도하였던 운하 공사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패한 이유는 하나는 단단한 지반 때문으로 조선 시대 삽과 곡괭이 수준의 도구로는 단단한 화강암 암반을 파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어렵게 암반을 파낸다 하여도 밀물이 밀려오면 운하 터가 허물어지고 파낸 자리가 도로 메워진다. 17대 대통령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후 수십조 원을 들여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운하 공사에 착수하려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내륙 운하를 이용하면 우리나라 물류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지리적 조건과 잘 어울리는 개발이 될 수 있었을까?
운하 이용률이 높아야 운하의 장점을 살려 육상 교통에 비해 한꺼번에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하계 집중호우의 기후 특성이 나타나서 운하의 수송 분담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홍수를 걱정, 겨울에는 하천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천의 유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관리비는 운하의 건설 비용 외에 매년 추가적으로 지출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형적 조건도 운하 건설에 적합하지 않다. 운하를 파기 위해 산맥을 통째로 없앨 수 없으니 산맥 양옆으로 물을 가두는 갑문을 설치하여 누군가가 갑문을 열고 닫고 근무까지 해야 한다. 또 삼면이 바다라 연안 바다를 이용하면 된다. 해운의 화물 운송량은 7퍼센트고 91퍼센트의 화물 운송은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언제든지 고속도로에 가면 화물차를 볼 수 있다.
'동포'라는 말은 보부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부상들이 서로 옷을 바꿔 입는 풍습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일심동체를 확인하며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 보부상들이야말로 역사의 숨은 주인공들이다. 수로를 통해서도, 육로로도 힘들었던 물자 소송을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전 국토를 돌아다니며 물자를 공급했다.
5일장에 구경 가면서 왜 5일마다 장이 열릴까? 5일장은 어떤 의미일까?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장시, 장날은 15세기 중엽에 전라도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하나의 시장만으로는 최대 도달 범위 내에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인구 규모를 확보하지 못하고 5개 지역을 합쳐야 비로소 최소 요구치가 만족되어 매일 열리지 못하고 5일마다 열렸다고 한다. 닷새 간격으로 열렸던 장시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단순한 상품 교환과 매매의 장소가 아닌 유흥, 교류, 지역 화합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인하대 이름이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따서 인하대라고 한다.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인 1952년에 대학 설립 발의가 되었다고. 비하인드스토리를 늘 흥미롭다.
역사를 알면 현재를 알고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역사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게 되면 그 옛날 스마트폰도 없는 시절의 선조들이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역사는 오만함을 버리게 한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늘 같은 시각에서 바라본 문제도 지리적 관점에서 보게 되니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