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불평등 자체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면, 경제적 평등주의를 진정한 도덕적 이상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9p)
내가 보기에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들의 소득이 지나치게 불평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 중에 빈곤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14p)
우리는 기본적으로 빈곤과 과도한 풍요를 모두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 결과는 분명 불평등의 축소일 것이다. (……) 경제적 평등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도덕적 이상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회의 구성원 일부는 충분한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함으로써 안락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다수의 구성원은 가진 것이 너무 적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다.(16p)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모두가 동일한 몫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도덕의 관점에서는 각자가 충분한 몫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18p)
중요한 사실은 특정한 효용 문턱 이하에 있는 사람들이 추가적 자원을 제공받음으로써 효용 문턱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그들에게 반드시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문턱을 넘는 것이다.(47p)
우리는 그들이 너무 가난하다는 사실에 도덕적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는 단지 소유한 화폐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는 괴로워하지 않는다.(49p)
(……)평등은 각자가 타인들과 동일한 것을 가졌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에 비해 존중은 좀 더 개인적이다. 어떤 사람을 존중을 갖고 대우한다는 것은 그의 특정한 인격이나 상황에서 해당 문제와 직접 관련되는 측면들에 기초해서 대우한다는 것이다. 존중을 갖고 어떤 사람들을 대우한다는 것은 (……) 그들에게 특별한 혜택이나 손해를 부여하는 것을 배제한다. (……) 평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식별할 수 없는 결과들을 목표로 하는 반면, 존중을 갖고 대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특수성과 부합하는 결과들을 목표로 한다. (82~83p)
사람들이 존중이 결여된 대우에 분노하는 것은 그런 대우가 본질적으로 그들에 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