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만에 하나 문명이 붕괴될 때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행동했다. 일종의 협업적 스토리텔링 내지 실생활 역할극을 펼친 셈이었다._17p

딜런은 문명이 붕괴될 거라 믿었고 문명이 붕괴될 돼서도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 공동체를 만들기로 한다.

종말 자체는 끔찍한 게 맞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더 단순한 삶의 방식은 그 이전의 기술 의존적인 삶의 방식보다 더 나을지 몰랐다. 어쩌면 긍정적 의미에서 유토피아에 가까울 가능성도 있었다._40p

문명이 붕괴되더라도 아마 차근히 붕괴될 것이다. 딜런은 문명이 아주 박살 났을 때를 상상하고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다만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상상이었는지는 곧 깨닫게 된다.

찰스 메케이가 말한 '대중의 광기' "인간은 무리로 있으면 광기에 빠졌다가 오직 한 명씩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유토피아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진실로 문명이 붕괴된다고 믿고 있을 때 딜런만 천천히 제정신으로 빠져나오며 우울증에 빠져버린다.

인간은 기계를 끌 수 없게 될 것이다. 기계에 너무 의존한 끝에 기계를 끄는 것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지기 때문이다._57p

확실히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닐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상위 포식자 위치에 있지만 인간은 감정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기 쉬운 것처럼 허점이 많다. 로봇은 철저히 이성적이라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들이다. 유토피아 실험이 빨리 실패하는 원인은 이상주의자들은 터무니없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어서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금세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가 현실적이기까지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는 내 마음속 악마와 직접 대면하는 걸 피하고 싶어서 유토피아 실험을 계획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중이었다. 아마 맨 처음 실험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기도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나 자신이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으며, 이 실험은 어떤 '치유적 공동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그릇된 시도임을 말이다. 그러나 결국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공동체는 나를 전혀 치유하지 못했다. 반대로 상황은 더 악화되어 이제 결국 혼자가 되었다.

나는 재건의 과정,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과정은 고독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리저리 부추길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내게 있다.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 유일무이한 나를 창조할 수는 없다. 혼자 힘으로 폭풍우를 헤치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_165p

우리 안에 갇힌 동물처럼 도망치려고, 야생으로 돌아가려고 필사적이었던 게 생각났다. 이제 나는 안전한 동물원으로 돌아와 바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훈육을 통해 깨우치고 있었다._176p

종말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대비하려고 애쓰지 말고 재난이 닥쳤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운에 맡기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_207p

지원자들 모두를 내 망상 속에 끌어들이는 데 막 성공해놓고 스스로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음을 깨달음 샘이었다. 그리고 망상은 처음 뿌리를 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해방은 기쁘기는커녕 반대로 의기소침한 상실감만을 남겼다._234p

부유한 나라에서 일상을 영위할 때 특별히 의식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이 화장지나 치약, 비누 같은 사소한 일상용품의 고마움이다. 문명이 붕괴된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만 할 때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실제 행동에 옮기고 나서야, 즉 문명이 이미 붕괴된 것처럼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 사소한 세부 사항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사소한 부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함이 드러난다._239p

닉 보스트룸은 인류의 멸망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해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갖는 일이 꼭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존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종이로서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_307p

문명의 붕괴 역시 두렵지 않다.(……)그 가능성과 직면해봤기 때문이다._311p

미래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말이 온다고 믿고 유토피아 공동체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집도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실행한 실험은 이혼만 남은 채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의 망상이 끝이 났을 때 그는 우울증에 걸렸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고 문명적 붕괴가 언젠가는 올 거라고 미리 누리고 있던 것을 집어던지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전 시대로 돌아가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는 그의 망상을 실제로 실험해보고 싶었고 실행했다. 그의 용기에 높은 찬사를 보낸다. 망상에서 시작되어 끝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결과를 낳았더라도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꿈을 좇지 않았다는 사실로 평생 후회할 일은 없게 되었다. 그는 무모한 계획을 실행했고 후회했고 다시 삶을 시작했다. 이 보석 같은 경험 덕분에 그는 평생 유토피아의 삶을 궁금해하며 후회하는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망상을 실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자기가 꼭 하고 싶고 궁금한 것은 실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진 게 많으면 포기하기가 힘들다고 하던가. 그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꺼이 다 포기하고 빈털터리가 되고 경력이 단절되어도 꼭 하고 싶은 걸 했다. 그는 앞으로 유토피아 공동체에 대한 궁금증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하지 않아 후회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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