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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서른 개쯤 넣으면 하나쯤 다음 단계로 통과되는 이력서를 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어. 아빠는 신장 투석을 매주 받아야 하고, 아빠를 돌보는 엄마는 류머티즘으로 고생 중이고,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동생은 아무리 봐도 우울증인 거 같았어. 나는 가족 중에 유일한 경제인이었으니, 의료보험이고 뭐고 다 나한테 달렸던 상황이었지. 이직이고 재취직이고 엄두가 안 났다고._7p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_42p
옥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느낌은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지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 공간, 혹은,, 삶을 마감하는 공간. 우리 삶이 지쳤을 때 마음속 옥상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이란 게 으레 그런 거지 하며 불합리함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라 말하는 폭력 사이에서 우리는 옥상을 찾는다.
광고사업부 사원으로 일하면서 일상적인 성희롱을 견뎌가며 버티고 있는 주인공은 함부로 이직조차 하지 못하는 환경이다. 그나마 직장 언니 셋과 함께 버티고 있었는데 언니 셋이 줄줄이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떠나니 자신도 도피 결혼이라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컬트로 남편을 만났다는 언니들의 말에,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주인공이니, 밑져야 본전으로 옥상에서 오컬트를 시전, 운명의 상대라는 남편이 나타났다. 인간이 아닌 남편은 절망을 빨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주인공은 시골에서 심리치료라는 번드르르한 명함을 가지고 남편과 함께 사람들의 절망을 빨아들이며 살아간다. 도피 결혼이라 함은 보통 돈 많은 집안에 시집가서 인생 피는 거라 많이들 생각하겠지. 취집이란 부정적인 단어도 생겨난 만큼 실제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반대로도 물론이고.
벼랑 끝에, 옥상 끝에, 겨우 끈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오컬트니 미신이니 뭐니 무엇이 중요하겠나, 일단 우리 주인공은 성희롱과 성추행이 난무하는 회사에서 벗어나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많은 절망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여, 옥상에서 만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