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언어
장한업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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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분노하지 않아야지 결심하며 읽었다.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말들도 차별의 언어를 낳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들에 대해 어원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 시작해 정착된 것은 정작 없다.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차례, 한복 등) 다른 나라에서 옮겨와 합쳐진 것이다. 이미 다문화인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다문화라는 용어는 20세기에 이루어진 국제화,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경의 개념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다양한 문화들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며 생겨난 용어지, 결코 외국이나 동남아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닙니다. 요컨대 다문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지요.

다문화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제 세계는 다문화다. 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수용하는 곳도 있고 한국처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곳도 있다. 앞으로 외국인의 숫자는 더 늘어날 텐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이 더 이득일까?


한국에서 실시하는 다문화교육은 극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화주의적 적응교육

그들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냥 내뱉는 말 '너네 나라로 돌아가'가 얼마나 그 사람들에게 칼로 내려꽂히게 될까. 그건 말이 아니라 칼이다.

단일민족, 혈통, 혈연을 중시하면서 한글을 왜 그리도 소중히 대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일본을 그렇게도 욕하면서 상주가 검은색 양복에 완장을 차는 것과 영정사진을 국화꽃으로 장식하는 일본의 풍습은 왜 따르는 걸까. 한국 전통 동화 보다 서구 동화를 더 많이 읽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아이들. 다양성을 골라가며 존중하는 것 같다. 서양은 옳고, 나머지는 옳지 않다고.

한국 사람들도 외국 가면 다 이방인이다. 옛날엔 나라 사정이 좋지 않아 강제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된 한국 사람들도 많다. 영원한 우리도, 영원한 이방인도 없다. 우리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 가서 열심히 사는 것처럼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그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일단 나부터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련다.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아들 등. 마치 우리라는 바운더리 안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배타시키는 그런 단어. 한국 사람들이야 오랫동안 써 왔으니 아무 느낌 없지만 이방인이 듣는다면 얼마나 외롭고 서글플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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